▲24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발표하는 김오진 1차관김오진 국토교통부 1차관이 2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국토교통부는 '2024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부동산 공시가격 비율)'을 2023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토교통부 김오진 제1차관은 "공시제도가 공정과 상식에 기반하여 운영되기 위해서는 현실화 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종합적인 처방이 필요한 만큼, 국민의 눈높이에서 현실화 계획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2024년도 공시가격에 적용할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2035년까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폐지하겠다는 이야기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과 폐지의 명분은 무엇인가?
문재인정부가 지난 2020년 공동주택, 단독주택, 토지의 공시가격을 2035년까지 시세의 90%까지 올리겠다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한 이유는 공시가격이 조세·복지 등 사회 여러 분야에 활용되고 있지만 50~70%의 낮은 시세반영률과 유형·가격대별 현실화율의 차이가 있어 조세부담 및 복지혜택의 불형평·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정책에 대한 생각과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문재인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제시하면서 나름의 명분과 원칙을 제시했다.
지난해 윤석열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면서 '2022년 집값 급락에 따른 실거래 역전과 국민 부담'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2022년은 집값의 50%까지 하락한 지역이 있었고 2021년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던 집값으로 인한 보유세 부담이 단기간에 높아진 국민들에 대한 고려라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명분이다. 하지만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과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 폐지에 대한 명분과 원칙은 무엇인가?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보도자료를 읽어보면 '국민의 일반적인 기대와 실제 공시가격이 괴리되'어 신뢰도가 떨어지고 '부동산 시장 급변 가능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국민부담이 급증하는 부작용' 발생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명확한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도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도 다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함이라는 말만 눈에 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동결되면 벌어질 일들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동결하면 모든 국민들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정책이 변하면 어떤 국민은 이익을 보고, 어떤 국민은 손해를 본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동결되면 누가 웃고, 누가 울까? 일단 다주택자, 고가 부동산 소유자들은 웃는다. 누진 구조로 되어 있는 보유세 체계에서 다주택자, 고가 부동산 소유자들은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대폭 저렴하게 책정되면 그만큼 보유세, 건강보험료 등을 덜 내게 되어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다.
반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경제적 손실이 생긴다. 누군가 세금을 덜 내게 되면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한다. 2024년 정부의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많아 적자국채를 81.8조 원 발행할 것이라고 한다. 국채발행에 대한 이자는 세금으로 나간다. 다주택자, 고가 부동산 소유자들의 세금을 깎지 않았다면 내지 않았어도 되는 이자다. 고가 부동산 소유자와 다주택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고 무주택자를 포함한 모두의 세금으로 정부부채의 이자를 갚는 것이기에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은 간접적이지만 무주택자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킨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로 인해 더 직접적인 손실을 보는 집단이 있다. 저층주거지의 다세대주택·다가구주택을 여러 채 소유한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이다. '전세사기'하면 빌라를 떠올릴 정도로 갭투기·깡통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건·사고는 저층주거지의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집중되었다.
저층주거지에 전세주택 임차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전세보증보험이 가입되지 않으면 그 집은 쳐다보지도 않는 상황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이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에게 불리한 이유는 공시가격이 시세에 근접할수록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쉬워지고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최대 수준으로 전세보증금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 입장에서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올라가 재산세 부담이 조금 늘더라도 역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하락규모를 낮추기 위해서는 공시가격이 시세에 근접하게 올라가는 것이 유리하다.
언론 기사에 따르면 강희창 전국비아파트총연맹 공동회장은 "공시가가 하락하면 역전세금을 더 준비해야 하는데 이미 가용 가능한 돈을 당겨써 자금을 더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임대인들이 많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같은 다주택자이지만 아파트 임대업자와 달리 저층주거지 임대업자들이 처한 상황이 이렇게 다 다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동결하고,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을 포기했을 때 어떤 국민이 웃을지 보면 윤석열정부가 말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토록 재정건전성을 중요시 여기는 현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훼손하면서도 세금을 깎아주려는 '국민'이 모든 국민은 아닐 것이다.
명분과 원칙이 무너진 정책과 정치≒문명의 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