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함양
30여 년간 식당을 하며 요리를 해 왔다면서 아직도 요리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여인이 있다. 부엌에서 하는 모든 일이 지겨울 만도 한데 그녀는 앞치마를 두르는 순간부터 재미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재미의 요소는 요리하는 그 자체만이 아니다. '뭘 만들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있다.
강원도가 고향이라고 밝힌 전영숙 여사는 고향 하면 생각나는 게 '감자'다. 감자는 가장 흔한 식재료 중 하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감자.
"전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릴 때 너무 많이 먹었으니까요."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는 팔남매의 자식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방법으로 감자요리를 택한다. 삶고 볶고 갈아서 만든 감자 요리를 전영숙 여사는 어릴 때 모두 맛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감자껍질을 자주 벗기도록 시켰다. 감자요리의 첫 단계가 바로 껍질 벗기는 일이니 말이다. 지금이야 채칼이 있어서 금방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그 시절엔 감자껍질을 벗길만한 요긴한 도구가 없었다.
"학교 갔다오면 감자를 깎아 놓으라고 시키셨죠. 채칼이 뭐예요, 그땐 숟가락이나 칼을 썼는데 감자껍질 벗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은 '너무 많이 먹어서, 지겨워서 먹지 않는다' 또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로 나뉜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음식은 이렇게 좋거나 또는 싫은 기억으로 뇌에 저장된다.
감자는 싫어도 감자부꾸미는 좋다
감자가 싫다던 전영숙 여사지만 '감자부꾸미' 만큼은 예외의 음식이다. 매일 먹는 감자요리가 지겨울 때쯤 어머니가 해 주시는 감자부꾸미. 부꾸미는 반죽을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소를 넣고 반으로 접은 다음 번철 같은 곳에 기름을 둘러 지진 떡이다. 반죽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수수부꾸미, 감자부꾸미 등 다양한 부꾸미로 완성된다.
그녀가 어릴 때 먹었던 감자부꾸미는 감자만 갈아서 먹었던 감자전에 불과했다. 팥도 귀해서 팥앙금을 소로 넣는 것도 드물었다.
"감자부꾸미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지요. 그땐 강판도 없었어요. 못으로 함석을 뚫어서 강판을 만들었어요. 감자를 갈다보면 손도 많이 다쳤어요. 지금은 그 모든 게 추억이네요. 그땐 소를 넣을 것도 없이 그냥 반으로 접어 솥뚜껑에 부쳐 주신 게 전부였죠. 그래도 어찌나 맛있었는지..."
고향을 떠나고 결혼하여 엄마가 되고 보니 없는 형편에 농사지은 걸로 배불리 먹이려는 어머니의 노력이 눈에 보였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감자부꾸미와 오버랩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