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떠는 미합중국의 외교관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1885년 말경의 한양

등록 2023.11.29 14:07수정 2023.11.2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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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5년 말경의 한양입니다. 


오늘날 외교관들은 특권을 이용하여 사리를 취하거나 불법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기준에 비추어 보면 캥기는 일이 내게 있었습니다. 한국의 최초 우표 그리고 진주를 해외로 반출시켜 많은 이익을 취했거든요. 기록을 위하여 여기 적습니다.

내가 입수한 우표는 모두 6천 장이었으며 그걸 일본 요코하마의 에이전트를 통해 미국의 우표상에게 보냈습니다. 고가로 팔리기 시작했죠. 이번에 보스턴에서 1,100장이 팔렸는데 142불의 수입을 얻었답니다. 나는 동생 Ed에게도 얼마간의 우표를 보냈고 그걸 팔아 치솔을 사도 좋고 면도용 브러시를 사도 좋으나 1센트도 담배값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일렀답니다. 동생이 정말 속이 없어서, 집안의 골치거리였죠.

당시 조선에서 10불에 구입한 진주 한 알이야말로 동방명주였습니다. 특별히 영롱하고 큰 거였습니다. 전문가에게 가치를 문의해 보니 최소 400불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하더군요. 어쩜 1000불이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걸  미국의 딜러 Kunz씨에게 보낸 지가 언제인데 종무소식입니다. 선편이 올 때 마다 이제나 저제나 소식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사실 푸트 공사도 조선 진주를 총 400불어치나 사들였고 귀국할 때 가져갔지요. 굉장한 양이죠.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코 사람이 조선 해안에서 진주를 채취할 수 있는 특허를 얻어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나는 조선 정부와 교섭하여 특허장을 얻어 미국에 보냈습니다.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여러분, 당시 내가 한양에서 말하기 힘든 극빈 생활에 시달렸다면 믿어지나요? 미합중국의 외교관 더구나 공관장이 난방비가 없어 추위에 시달렸다면 믿어지나요?

"요즈음 국무부에서 제게 듣기 좋은 편지들을 보내옵니다. 그러나 달러는 보내지 않는군요. 1400달러를 우선 입채하여 공금에 충당하고 있답니다. 우리 의회가 다음 회기에는 이 빚을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고 약속했으니까요. 현재 예산 부족으로 난방에 애로가 있답니다. 날씨가 매우 추워서 공관 난방에 월 75불이나 들어가는데 돈이 없는 것이죠. 저는 여전히 공직을 떠나 다른 직에 종사해 볼까 하고 고민하는 중입니다. 동양의 회사들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만 장래 진로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님의 훌륭하신 말씀을 듣겠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심려 마시길 바랍니다." - 1885. 11.24. 편지

청나라의 북양 대신 이홍장이 조선에 파견한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대외 업무와 관세업무를 한 손에 거머쥐고 있었는데 그 못된 자를 축출한 것은 일대 쾌거였습니다. 나는 그 일의 성사를 위해 온갖 기량을 다 발휘했지요. 그러나 문제는 조선의 외교부서 사람들입니다. 청나라의 충직한 신하 노릇을 자임하고 있으니까요.

조선의 외교부에서 정말 어처구니 없는 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1885년 11월 23일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님, 이곳 상황을 가늠해 보실 수 있도록 뭣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선인들의 음력으로 어제 밤이 바로 갑신정변이 일어난 지 꼭 1년 되는 때였습니다. 작년 왕궁에서 일본 병력에 공격을 가했던 청나라 장군이 오늘날 여기에서 청나라 총독이 되었답니다. 어제 밤에 외교부에서 만찬 행사가 있었는데 청나라 총독을 위한  것이었죠(국왕은 그 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구요).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외국 대표들이 초대받았습니다. 조선인들은 날짜에 대한 미신이 있답니다. 작년 그 시간에 변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금년 그 시기 즉 어제에도 재앙이 일어날 거라고 도성 사람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에 그렇게 믿으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 동양이지요.

저는 초청장을 받아들고 머리를 잠시 긁적였습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가야할 것 같아 그렇게 결심하였답니다. 공사관의 조선 일꾼들이 모두 놀라더군요. 그들은 날더러 경호원 전원을 대동하고 가라고 권유하였습니다만 저는 그냥 단신으로 나섰습니다. 6시 30분 외교부에 도착했을 때에 거리가 완전히 텅 비었더군요. 외교부에 들어서니 청나라 관리들, 네 명의 조선 관리 그리고 러시아 공사관의 서기관이 나와 있더군요.

러시아 서기관은 바로 하루 전날 한양에 부임했구요. 몇 분 지나니까 외교부의 장관이 두통이 있다면서 자리를 뜨더군요. 저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다들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들려오는 대답이 참... 영국 대표는 두통이 나서 못 왔고, 독일 대표는 이질로 못 왔고, 일본 대표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못 왔고 러시아 공사는 다리를 다쳤다는 거였습니다! 이 새빨간 거짓말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답니다. 나는 옷 속에 멜빵으로 메고온 총신의 서늘한 감촉에 안도감을 느꼈답니다. 

만찬 분위기는 무겁고 으스스했습니다. 창호지 벽 뒤에서 몇 명이 구멍을 내어 안쪽을 들여다보는 광경을 목격한 참석자들은 식겁한 표정이었습니다. 한시 바삐 도망가고 싶어하는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어휴... 다 말씀드리려면 한이 없겠습니다. 
-1885.11.24 편지


고국의 부모님은 항상 나의 건강과 안전을 걱정하셨고 빨리 조선을 탈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마다 매번 나는 제발, 저는 건강하고 일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걱정일랑 마시라고 말씀드려야 했지요. 단지 일인 삼역을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음을 고백했지요. 그리고 나의 고국 미국에 대하여 점점 마음이 멀어지고 있음도 털어 놓았습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어떤 면으로는 이곳의 긴박한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할 일이 너무 많답니다. 일인 삼역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본국에 보고서를 보내지요. 가장 큰 어려움은, 자칫하면 이곳의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들 수 있다는 점이지요. 신경을 곤두세워 신중하게 처신해야만 합니다.

아버님, 우리 정부가 저를 방기하는 상황에서 제가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여기 머물러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불충스런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고국이 저를 배신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만일 상황이 더욱 나빠져서 제가 고립무원지경에 빠지게 된다면, 저는 우리 정부에 어느 특정 날짜에 공사관을 폐쇄하고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통첩할 것입니다." - 1885.11.24 편지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조지포크 #갑신정변 #진주 #묄렌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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