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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는 남잔데요?" 아파도 병원 못가는 트랜스젠더들

복지부, '트랜스젠더 입원 가이드라인' 인권위 권고 거부... "국가가 차별 용인" 비판

등록 2023.11.30 15:07수정 2023.11.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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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3월 31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퀴어는 어디에나 있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다 -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기자회견'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소수자부모모임, 청소년트랜스젠더인권모임 튤립연대 등 관련 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여성이라고요? 주민등록번호는 남자인데 다른 분 정보 아니에요?"

겨울(31·트랜스해방전선 대표)에게 병원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성별 정정 전 병원에 간 그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남성을 뜻하는 '1'로 시작한다는 이유로 접수 창구 직원에게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을 해야 했다. 진료를 받을 때도 의사에게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반강제적으로 밝혀야 했다. 이제 그는 큰 병이 생기지 않는 한 병원에 가지 않는다.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가 아니면 조금 아프더라도 참는다.

겨울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변경한 'MTF(Male To Female)' 트랜스여성이다. 지난 2016년 성별 정정을 위한 법적 요건인 '의료적 트랜지션(성전환 수술 혹은 시술)'을 마쳤다. 이후 다른 이유로 내과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의사들은 여자 병실에서 치료받는 그를 신기해하며 성전환 수술 부위를 보여달라는 등 입원과 상관없는 요구를 했다.

그는 지난 29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아프고 힘들어서 돌려보내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매우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난다"고 했다.

"트랜스젠더는 병원 이용할 자격 없단 건가"

트랜스젠더는 출생 당시 생물학적 성별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별이 다르다. 예컨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생각하는 '트랜스여성'이 있다. 겨울이 이 경우에 속한다. 그 밖에도 생물학적 여성이 스스로 남성이라 느끼는 '트랜스남성', 남녀를 구분하는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가 있다.

성별 이분법이 강하게 작동하는 병원에서 겨울이 겪은 차별은 비단 한 사람만의 경험은 아니다. 실제 인권위가 2021년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성별정체성에 맞지 않는 입원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한 참여자는 전체의 33.1%였고, 16.8%는 '의료인이나 직원이 자신의 이름과 성별이 맞는지 물었다'고 답했다. 10.7%는 그 과정에서 '모욕적 발언이나 불필요한 질문을 들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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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인이 너무나 부족하다. ⓒ brighamandwomensfaulkner.org

 
"모든 사정을 사전에 예측해 트랜스젠더 입원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할 수 없다며 보낸 의견이다. 지난 1월 인권위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의료서비스 이용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보건복지부는 장관 명의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1인실 이용을 권고한다" 등의 설명과 함께 위 같이 답했다. 이같은 보건복지부의 권고 거부는 지난 28일 국가인권위원회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겨울은 "의료서비스를 누려야 하는 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인데도 보건복지부는 트랜스젠더가 이를 이용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인권위가 먼저", 전문가들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

지난 2021년 10월 법적 성별을 정정하지 않은 한 트랜스여성이 병원에 입원하려 했으나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아 여성 병실에 입원하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해당 병원에는 트랜스젠더 입원에 관한 지침이 없었고,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라 남녀를 구분한 병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를 향한 인권위의 트랜스젠더 입원 가이드라인 제정 권고는 이 일을 겪은 트랜스여성의 진정으로 나왔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트랜스젠더의 병실 입원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적은 따로 없었다.

<오마이뉴스>는 보건복지부에 재차 입장을 물었으나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며 기존 태도를 재확인했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관계자는 29일 전화통화에서 "트랜스젠더도 정체성이나 수술 여부에 따라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한 걸로 아는데, 그런 부분을 (가이드라인을 통해) 일률적으로 나열해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또 "이것은 병원과 의료기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목욕탕, 화장실, 헬스장에도 트랜스젠더를 위한 공간은 없다"며 "인권위 차원에서 먼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보건복지부도 거기에 맞춰 방향을 잡는데, 어린아이 떼쓰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왜 가이드라인이 없냐'고 지엽적으로 접근하는 건 주객전도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치료받을 권리는 어떤 경우에서든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며 "국가는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관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 지침을 마련할 의무가 있는데, 보건복지부가 인권위 권고를 거부하겠다는 건 트랜스젠더 환자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거나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선을 일률적으로 딱 정하라는 게 아니라 트랜스젠더가 의료기관을 좀더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침을 마련하라는 것"이라며 "당장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어렵다면 당사자들 목소리를 듣거나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는데 지금 보건복지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돌려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법무부에 이미 성소수자 수용자 관련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보건복지부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표현과 차별적 대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기관 전반에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주의해야 할 용어 등을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트랜스젠더 #보건복지부 #박한희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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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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