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디지털단지역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조작반응. 흐린 날에 촬영되어 그나마 반사가 덜하다.
철도노조 구로승무지부
해당 역은 민간업체가 유지보수 업무를 한다. 민간업체 관할 시설물에 철도공사가 자기 돈을 들여 유지보수를 했다간 '배임'이 되니, 공사는 보수를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배임인지 따져 물었다. 사측은 '이들 역은 스크린도어에 붙인 광고수익을 가져가는 대신 민간업체가 유지보수를 맡기로 계약이 돼 있다'고 했다. 이어 '해당 계약이 끝날 때까지 CCTV나 조작반이 보이지 않아도, 스크린도어에 문제가 생겨 매일같이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도 보수할 권한이 없다'는 요지로 답했다.
승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어느 날 무사고 백만 킬로미터를 달성했던 베테랑 기관사가 스크린도어 일부가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해 승객들이 타고 내리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백만km를 무사히 달리다 처음 범한 과실이지만, 철도경찰은 해당 기관사를 입건하더니 과태료를 부과하고 사흘 만에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책임을 진 것은 오직 기관사 개인뿐이었다. 역 시설 유지보수의 책임을 진 민간업체도, 철도를 운영하는 철도공사도 자기 책임이라며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문제의 스크린도어 하자는 오늘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공포스러운 철도 운영과 시설유지보수 업무의 분리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 민간업체에 위탁해 철도공사와 분리된 회사가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는 아직 일부 역사와 시설물에 국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철도 노동자들은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식을 들었다. 국회가 철도 유지보수 업무 전체를 철도공사에서 분리할 법적 근거를 만든다는 것이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 38조에 따르면, '철도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 이 조항이 없다면, 철도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조각 내 아무 업체나 외주화해도 무방하다.
나와 동료들은 우려를 넘어 공포를 느꼈다. 향후 외주 업체와 철도공사 간의 책임 공방은 불을 보듯 뻔하다. 스크린도어 문제와 같이 손 볼 곳이 크지 않은 곳도 4년 동안 방치될 정도였다. 만약 그 사이 일이 꼬여 문제가 생기면 노동자 개인이 모든 걸 책임지고 부담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과태료가 아니라 실형, 아니 현장 노동자의 목숨으로.
사실 스크린도어 하자는 철도 안전 시스템 전체에서 사소한 부분일 수 있다. 천 명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싣고 달리는 수백 톤짜리 쇳덩어리가 열차 아니던가? 무게 만큼 책임도 무겁고, 그 책임만큼 시스템은 섬세하다. 일부 승객들이 객실에서 잠시 잠에 빠진 사이, 기관사와 승무원은 열차 진동이 평소보다 심해진 것은 아닌지 늘 신경 써야 한다. 전 차선에 걸린 비닐이나 풍선을 놓치면 차량의 전기 장치가 파괴될 수도 있다. 신호나 진로에 오류가 있다면 긴급히 멈춰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즉시 관제에 보고를 해야 하고, 시설과 신호, 전기, 차량 등 각각의 업무를 담당한 직원들이 직접 차량과 시설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