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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의 5초, 김미숙의 1822일... "불복! 불복합니다!"

[대법원 선고일 고 김용균 어머니의 하루] 원청 법인·대표 모두 무죄... 결국 읽지 못한 엄마의 글

등록 2023.12.07 18:36수정 2023.12.0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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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이사장은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예고 없이 대법원을 향해 몸을 돌려 소리쳤다. "어떻게 법원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 곽우신

   
"2023도2580. 상고를 기각한다."

'기각' 두 글자가 들리는 순간,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대법원 1호 법정 방청석에서 일어나 '불복'을 외쳤다.

"불복합니다, 불복합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서부발전이 사람을 죽였는데..."

선고를 마치자마자 재판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빠르게 법정을 빠져나갔다. 김씨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 아들이 죽었습니다. 당신 아들이 죽어도 그렇게 결론 내릴 겁니까."

대법원이 '김용균'의 죽음을 기각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그의 죽음과 관련해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전 대표(김병숙)의 무죄를 확정지었다.

김씨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담담하려 애쓸수록 분노와 억울함이 북받쳤다. 김용균의 죽음을 떠안은 사람들의 항의는 법정 밖에서 더 들끓었다. 김씨 표현에 빌리면 "예상은 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무책임한"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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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의 휴대폰 잠금화면에는 검은 티셔츠를 입은 스물다섯 김용균이 있다. ⓒ 곽우신

 
기각과 파기환송, 두 개의 발언문


아침은 큰 기대 없이 분주했다. 7일 오전 김씨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자택을 나섰다. 새벽 6시 30분,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지만 재판에 늦지 않으려면 9시엔 집을 나와 버스를 타야 했다. 걷는 내내 전화와 문자가 수없이 오갔다. 대법원 선고 직후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의 연락이었다. 그는 부재중 목록을 일일이 확인하며 손가락으로 답장을 썼다.

아들 용균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는 지난 2018년 12월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순찰 업무를 하던 도중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씨는 용균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었던 12월 6일 어제 태안에서 열린 추모제에 다녀왔다. 이날 대법원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그는 많이 피곤해했다. 때마침 난 빈자리에 앉자마자, 김용균재단 텔레그램 대화방에 메시지들이 올라왔다.

"10시 20분 선고라 10분까지는 들어가야 할 듯하네요."(미정)
"시간 맞춰 갈게요."(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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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아침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 곽우신


대법원까지 가는 길은 40분 정도 걸리는 익숙한 길이었다. 김씨는 지난 11월 28일부터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러 이곳을 오갔다. 이미 단식농성, 오체투지 등 안 해본 게 없었지만, 마지막 판결을 앞두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난 4일에는 시민들이 쓴 편지 50여 통을 대법관에게 전달했다. 한국서부발전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영등포08' 마을버스를 타고 신도림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탔다. 대법원이 있는 서초역에 가까워지자 그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하며 지도 앱을 수시로 확인했다. 그의 휴대폰 잠금화면에는 검은 티셔츠를 입은 스물다섯 김용균이 있었다. 증명사진 속 김용균처럼, 김미숙의 표정에서도 초조함보다는 담담함이 읽혔다.

이날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결정이 뒤집힐 것인지, 한국서부발전과 피해자(김용균)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다고 볼 것인지 여부였다. 김 전 대표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권유한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원·하청 관계자들 역시 2심에서 대부분 형량이 줄어들어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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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맨왼쪽) 등과 함께 대법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 곽우신

 
김씨는 기각과 파기환송, 두 경우를 모두 대비해 두 개의 글을 준비했다.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낭독할 발언문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넘겨진 피고인들에게 재판부가 엄중한 처벌을 내려주길 바랐다.

"판결문은 이미 작성됐을 거고, 주사위는 던져졌잖아요. 오늘 또 무죄 판결이 나온다면 기업들은 산재사망 사고에서 생명과 이윤을 계속해서 저울질하지 않을까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죠."

오전 10시 20분 대법원 1호 법정에는 김씨를 비롯한 김용균재단 사람들이 모두 나와 선고를 기다렸다. 김용균 쪽 법률대리인 김덕현·박다혜 변호사, 직장 동료 이태성씨(발전비정규직노조 대표자회의 간사), 고 이한빛 PD 부모 이용관·김혜영씨도 자리를 지켰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법정이 열린 지 10분여 만에 김용균의 사건번호를 읊었다.

"2023도2580."

이어지는 선고까지 5초 정도 공백이 있었다. 김씨가 왼손으로 쓸어내린 가슴을 붙잡았다.

"상고를 기각한다."

아들이 떠난 후 1822일을 기다린 엄마는 5초 만에 나온 대법관의 일곱 글자에 가슴이 무너졌다. 방청석 여기저기서 낮은 탄식이 흘렀다. 이태성씨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 흐느꼈다. 법정을 나온 김씨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손팻말을 들었다. 대법원 앞에서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김씨는 '파기환송'이 아닌 '기각' 발언문을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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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대법원은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 선고 후 김미숙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을 다짐했다. ⓒ 곽우신

 
"용균아, 엄마가 너무 미안해"

"대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서부발전이 사람을 죽인 데 대한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데, 무죄라는 비인간적인 판결에 노동자들은 억울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은 이날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병숙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국서부발전과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에게 내려진 무죄 판결 역시 확정됐다. 하청 대표이사와 원·하청 간부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모두가 무죄 또는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실형을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심판결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본 결과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자의 일터를 위험하게 만든 배경에는 안전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려 온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방조하고 조장한 수사기관과 법원이 있었음을 오늘 대법원 판결이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다"며 "한국서부발전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면죄부를 부여한 대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박다혜 변호사는 "김용균의 죽음에 원청의 책임이 있다는 건 단지 노동계만의 주장이 아니다. 충분한 증거와 사실관계를 통해 검사의 수사와 기소가 이뤄졌음에도 대법원은 일터 현장을 제대로 보지 않고 현실에 눈을 감았다"며 "구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적용돼 한계가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이는 산안법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을 집행해야 하는 법원이 경영책임자의 고의를 좁게 해석해 법안을 무력화한 결과에 가깝다"고 했다.

기자회견 마지막에 김씨는 손팻말을 들고 대법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용균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용균아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법원이 어떻게 이렇게 기만적일 수가 있냐."

몰려든 취재진 수십 명의 카메라 셔터 소리 사이로 김씨가 외쳤다. 판결은 분노와 슬픔을 동반했지만, 김씨는 앞으로 국가의 잘못을 더 단단히 따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에서 안 되면 다른 곳에서 더 크게 싸우겠다. 당장은 패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길에서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열어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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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앞으로 생명안전기본법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다. ⓒ 곽우신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씨는 대법원 판결 전후를 다시 돌아봤다. 희망, 슬픔, 억울함,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안법 개정안에 이어 중대재해법 제정을 이끌어 낸 5년의 시간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김씨는 "아주 작은 희망이 마음속에 있었는데 기각이란 한 마디를 들으니 너무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다"고 떠올렸다.

그렇다고 재판 결과에 흔들리진 않았다.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순 없지만, 5년간 싸움을 통해 하청노동자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또 남아 있었다. 김씨의 다음 목표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다. 안전권을 보장할 주체로 국가와 기업의 책무를 규정한 법안이다. 그는 싸움을 해오는 과정에서 큰 위로를 주고받은 산재 피해자 유족들과의 만남도 이어가겠다고 했다.

김씨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함' 말고 더 있었다. 엄마의 활동을 응원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김씨는 '김용균 어머니'로 불러주는 자리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함께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회견에서 읽지 못한 '파기환송' 발언문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용균이처럼 스러진 노동자들이 억울하지 않은 세상, 그 죽음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쓴 글이었다. 그리고 오늘 꼭 읽고 싶었던 글이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대법원 선고 12월 7일 발언문(파기환송일 경우)

먼저 이런 판결을 내려 준 판사님께 존경과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평생 고마움을 안고 살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이렇게 파기환송 결과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봤을 때 가망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사람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는다면, 아들과 저를 안쓰럽게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5년 동안 함께해 온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걸어온 모든 시련을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처럼, 자신들이 잘못해서 죽었다는 것에 속아 제대로 항의할 생각조차 못한 수많은 죽음들에게 제가 대신 사과하고 명복을 빌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재판은 용균이만의 재판이 아닙니다. 그동안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죽음들을 대신한 싸움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판결이 미약하나마 좋은 선례로 남아 다른 죽음들에게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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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7일 준비했던 '파기환송' 발언문을 기자들 앞에서 끝내 읽지 못했다. ⓒ 곽우신

#김용균 #김미숙 #대법원 #한국서부발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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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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