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삿푸 곶의 비석
Widerstand
노삿푸 곶을 건너면 10km를 지나지 않아 '하보마이 군도'가 나타납니다.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땅이죠. 하지만 하보마이 군도부터는 일본이 아닌 러시아의 영토입니다.
이곳이 바로 '쿠릴 열도'입니다. 하보마이 군도를 시작으로 슘수 섬까지,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 반도 사이에 들어선 수십 개의 섬이죠. 그리고 이곳이 러일 영토분쟁의 중심이 되는 현장입니다.
쿠릴 열도에 러시아와 일본 중 누가 먼저 정착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양국의 주장이 엇갈립니다. 하지만 쿠릴 열도 남부는 일본이, 북부는 러시아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죠. 러시아가 일본과 접촉한 초기부터 쿠릴 열도를 둘러싼 산발적인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러일 양국이 처음 협상한 것은 1855년입니다. 일본이 러시아와 화친 조약을 맺으면서 영토 문제를 함께 정리한 것이죠. 사할린은 양국이 공동 관할하기로 하고, 쿠릴 열도는 둘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쿠릴 열도 남부의 4개 섬은 일본령으로, 나머지 북부 쿠릴 열도는 전부 러시아가 가져가기로 합의했죠.
하지만 일본에게 사할린을 러시아와 공동 관리하는 것은 부담이 따랐습니다. 당시 에도 막부에는 사할린 같은 큰 섬을, 그것도 러시아와 경쟁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것이죠.
결국 막부는 1875년, 사할린 섬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사할린을 러시아의 땅으로 넘기는 대신, 러시아가 갖고 있던 쿠릴 열도 북부까지 가져오기로 합의한 것이죠. 그렇게 사할린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고, 쿠릴 열도는 남부뿐 아니라 북부까지 전부 일본 영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관계가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죠. 1905년 러일전쟁이 벌어졌고, 일본은 승리했습니다. 그 대가로 사할린 남부를 가져오게 됐죠. 이제 남사할린도, 쿠릴 열도 전부도 일본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그런 채로 40년이 흘렀습니다. 일본 제국은 2차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여했고, 패망했습니다. 패전의 틈을 타 러시아는 남진했습니다.
러시아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가져간 남사할린뿐 아니라, 쿠릴 열도도 가져갔습니다. 일본이 한 번도 빼앗긴 적 없는, 쿠릴 열도 남부 4개 섬까지 차지했죠.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다음과 같이 합의했습니다.
"일본은 쿠릴 열도와 1905년 러일전쟁을 통해 획득한 사할린의 일부에 대해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