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금액을 200% 이상 달성한 ET 야구단의 위기브 모금 페이지
WEGIVE (위기브)
광주광역시 동구에는 발달장애 청소년 야구단, 'E.T(East Tigers)야구단'이 있다. 14세부터 24세까지 광주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청소년과 성인 2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2016년 결성됐다. 매주 토요일 아침, 함께 모여 야구 연습을 하고, 1년에 3~4차례는 지역 유소년야구단과 교류전도 한다.
이들에게 야구단 활동은 특별하다. 처음에 배트 잡는 것도 서툴렀던 아이들은 이제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며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반복 훈련을 거듭한 결과다. 단순히 야구 실력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사회성을 기르고, 홀로서기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찾았다.
그런 야구단이 재정난으로 인해 해체 위기에 놓였다. 올해 후원기업 지원 기간이 만료되면서 후원금이 중단됐다. 간식 및 야구복 지원, 훈련장 보수 등 항목을 하나씩 제외했지만, 광주동구장애인복지관 예산만으로는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광주 동구가 나섰다. 운영 자금 확보를 목표로 '발달장애 청소년 E.T야구단 지원 프로젝트'를 고향사랑기부제 기금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지난 4일, 모금 목표액인 8200만 원을 달성했다. 즉, E.T 야구단이 새 시즌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 플랫폼 위기브에서 모금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이다.
고향사랑기부제, 지역문제 해결의 새로운 열쇠
모든 지자체에서 모금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부의 속성상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상세히 공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곳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광주 동구가 모금이 잘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부금의 목적과 쓰임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지역문제 모두에 지자체 예산을 편성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동구는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 고향사랑기부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광주 동구는 광주광역시 내 다섯 개 지자체 중 가장 인구수가 적다. 소멸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지역이다. 인구수가 적어지면 세수도 적게 걷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해결되지 못하는 지역과제들이 많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낮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사업인 것은 아니다. E.T야구단 프로젝트는 이렇게 부족한 지방재정의 상황에서 고향사랑기부제라는 한줄기 빛을 만나 꽃피우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띈 건 모금을 진행한 '위기브'였다. 행정안전부에 전국 지자체 분담금으로 개설한 '고향사랑e음'은 현재 지정기부가 불가능하다. 반면, 위기브에서는 원하는 프로젝트를 선택해 기부할 수 있는 '지정기부'가 가능하다. 위기브 프로젝트 상세 페이지에는 기부금 사용처와 함께 현재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업데이트되어 있다. 지정기부 방식은 기부 투명성을 높이기에 향후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에 꼭 필요한 일이다.
광주 동구가 짧은 기간 내에 모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고향사랑기부제 플랫폼 '위기브'와 함께 지정기부 프로젝트를 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기브 컨설팅팀이 모금 전문가의 자문을 연결해주고, 적극적인 홍보대사 위촉 등 열심히 지자체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지혜를 모았다. 그 결과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광주 동구의 이러한 활동을 알고, 공감하며 지자체와 E.T야구단을 응원하고자 기부를 해 주었고 모금개시 4개월 만에 목표했던 1차 프로젝트 시행에 필요한 자금을 성공적으로 펀딩할 수 있었다.
지정기부와 민관 파트너십
일본 고향세의 성장 중심에도 민간 플랫폼이 있었다. 일본이 2008년 처음 제도를 도입하고 5년여간 모금액이 거의 늘지 않다가, 급격하게 성장하여 현재 9조원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급성장에는 기부편의성을 높여주고, 지자체의 문제해결을 적극 도운 민간플랫폼의 공이 컸다.
일본은 중앙정부가 플랫폼을 운영하지 않는다. 지자체가 현존하는 30여개의 민간플랫폼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또 민간플랫폼 뿐만 아니라 지역상사가 답례품 개발, 발송 등 관리도 하고, IT기업이 세액공제행정처리 간소화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고향세 제도 자체가 지자체 혼자만으로는 시행하기 어려운 제도임을 반증한다.
한국의 경우, 거의 대다수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 업무 담당 공무원을 1~2명으로 두고 있다. 그마저도 전담이 아니라 다른 업무도 같이 해야 한다. 기부를 해 본 적도 없는 공무원 혼자서 어떻게 모금을 할 수 있을까. 담당 공무원은 해당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지역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수밖에 없다. 기부금 세액공제 행정업무뿐만 아니라, 지역 과제를 잘 발굴하고 기부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도 해야 하며, 기부자에게 감사함을 담아 전달할 지역 답례품도 관리해야 한다. 처음 접하는 제도라 내용도 생소한데, 이렇게 과도한 업무량을 한 두명이 해내기에는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민간플랫폼을 활용하면 지자체의 이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된다. 기부 전문가의 컨설팅과 민간 플랫폼의 마케팅 전문성 등이 결합되면 지역문제 해결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민간 플랫폼은 단순히 수수료를 받고 홍보해주는 장사치가 아니다. 지역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전문지식을 공유하는 조력자이자 파트너이다.
수많은 행정업무를 지자체나 국가가 전부 할 수 없다.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의 전문성을 믿고 위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왜 고향사랑기부제는 유독 정부가 독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과 같이 정부가 독점하는 플랫폼 체제 내에서는 지자체의 다양한 색깔을 담기가 불가능하고, 규제로 점철된 제도의 활성화는 요원할 것이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는 결국 '민간의 참여'에 달려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고,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또한 행정측면의 관리 중심적인 중앙정부 플랫폼이 아닌, 기부자 친화적인 민간 플랫폼의 활성화를 통해 지자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기부자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다. 하루 빨리 다른 지자체들이 직면한 지역 과제들도 위기브에서 만나볼 수 있길, 모두가 합심하여 지역의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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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 지역재생 관련 경험 10년차 활동가. 현재 일본 히로시마현 진세키고원에 거주하며 일본 고향세를 활용하여 소멸위기지역의 지역활성화 사업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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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 '기부자 친화적' 민간 플랫폼 활성화 필요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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