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일을 하는 아빠를 응원하며 딸이 그림을 그려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권진현
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관리하며 사장님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매출이 집중되는 시즌에는 직접 현장에서 판촉활동을 돕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날이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은 1년 중 가장 높은 매출이 나오는 달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잘 준비하고 보내는 것에 모든 임직원이 한 달 내내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집중한다.
본의 아니게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9살 딸아이와 6살 아들은 아빠의 직업 특성상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엄마와 시간을 보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들은 아빠가 없는 휴일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빠,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교회에 못 가?"
못 간다는 나의 대답에 아이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정작 괜찮지 않은 건 나 자신이다. 그러고 보니 10년이 넘도록 가족과 교회가 아닌 사무실과 현장에서, 때로는 길바닥 한가운데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12월은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지만, 나에게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 강도가 극에 달하는 무척 힘든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추억을 만들기는커녕 부디 이번 겨울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다.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녀들은 불평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그래, 잠시 멘탈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나는 가장이었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본다.
특별하지 않아도
올해 겨울 기온이 예사롭지 않다. 12월 초순에는 20도를 넘기는가 하면, 21일 서울지역은 체감온도가 '영하 22도'인 역대급 한파를 기록했다. 갑작스러운 비행기의 무더기 결항으로 인해 제주 여행객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번 추위는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풀린다고 하는데, 차가운 바람에 크리스마스의 기운마저 얼어붙을 것 같다.
날씨만 추우면 좋겠지만 매서운 한파는 기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년간 제자리걸음인 급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물가상승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소비를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소비 자체를 없애려고 분투한다. 자영업자들이나 개인 사정으로 대출이 많은 사람들은 치솟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마이너스 통장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곳간이 넉넉해야 인심이 나는 법인데 누구 하나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던 불우이웃 돕기 성금소식이 예전처럼 활발하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생존을 위해 너도나도 소비를 줄이는 가운데 남을 돕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해마다 추운 겨울이면 울리던 구세군 종소리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 이웃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야 할 시점인데 조용하고 한산한 거리를 걷다 보면 나라 전체가 조용한 느낌이다.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함께 즐거워하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고 특별한 추억을 만들던 크리스마스는 어디로 간 것일까. 수년 전 남포동 트리 축제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 한 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