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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니스트가 논쟁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

[서평] 위근우 지음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등록 2024.01.25 11:48수정 2024.01.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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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편집자말]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이 책 제목이 딱 눈에 띈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정기적으로 뭔가를 써내야 하는 괴로운 내 속마음이 그대로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사정이길래 그토록 글쓰기가 귀찮은지 궁금했다.

책을 집어 들고 서문을 읽는데 어라? 재밌기까지 하네! 글이 귀찮은 이유는 아무리 잘 쓰려해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똥을 빚는 중일 수 있기 때문이라나? 공감의 실소까지 뿜게 했으니 책을 도로 놓을 수가 없다.


집으로 고이 모셔 와 속속들이 읽어 보니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라 신선했다. 대개의 글쓰기 책들이 권하는 여러 방법, 필사를 해라, 루틴으로 만들어라, 진정성 있게 써라 같은 제안을 저자는 이리저리 둘러메치고 뒤엎었다.

6년 차 경향신문 칼럼니스트이자 17년간 대중문화는 물론 사회 다방면에 걸쳐 비평의 글을 써 온 저자 위근우는 논쟁적이면서도 그만의 개성이 듬뿍 담긴 노하우를 그렇게 전하고 있었다.

통념에 도전하는 논쟁적 글쓰기

그의 주된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뉘어 읽힌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대로 글쓰기 통념에 도전하며 저자의 글 쓰는 비법을 소개한 부분이고, 두 번째는 근거와 사유가 탄탄한 논쟁적 글쓰기의 중요성과 논쟁적 글을 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에 대해 자신이 썼던 글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책 표지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책 표지 시대의 창
 
우선 그의 글쓰기 조언 중 귀에 쏙 들어온 부분은 잘 쓴 글의 구조를 모방하라는 주장이다. 필사는 아무리 해도 읽는 행위에 가까울 뿐 글 쓴 이의 통찰력이나 논리력은 습득할 수 없다며, 대신 저자는 잘 쓴 글들의 패턴을 모사하는 걸 추천한다. 저자도 선배 기자가 쓴 글의 특정 구조를 익혀 연습했고, 그 과정에서 글의 전체 구조를 구성하는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었다며 말이다.

글을 전개하는 패턴이 다양할수록 다루는 주제에 따라 글의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 일리 있는 조언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구조의 잘 쓴 글들을 늘 찾아 읽고 분석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일 것이다. 한편, 글의 도입부에 관한 부분은 읽다가 뜨끔하기도 했다. 바로 자신의 사적 경험을 글에서 다루고 싶은 대상과 연결하여 담은 첫 문단을 두고 일갈한 부분이다.


저자는 첫 문단이란 글의 이유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제시하는 기능이라고 전제한다. 그런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어 시작할 수 있다는 효과 때문에 많은 글이 자신의 사적 이야기로 첫 문단을 다 메꾸고 있다면서, 그것은 그저 쉽고 무의미하게 원고의 분량을 늘리는 일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저자는 가능하다면 개인적 경험담은 첫 문단의 한 두 문장으로만 할애하고, 첫 문단의 본 기능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나로서도 개인적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다가 장황하게 늘어지는 경우는 물론 은근히 분량을 의식했던 적도 있기에 저자의 예리한 지적이 따끔할 수밖에 없다. 독자의 공감은 끌어오되, 핵심을 간결하게 전하는 훈련은 아무리 해도 충분치 않은 듯하다. 덧붙여 저자는 좋은 글이 되는데 위력을 발휘하는 위트와 인용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도움말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의 두 번째 인상적인 지점이자 두드러진 특징은 평론가인 저자의 이력답게 논쟁적 글쓰기를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공격받을 글은 웬만하면 쓰지 말자'는 입장인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뭘 이렇게까지 논쟁적 글쓰기를 옹호하고 강조하는지 살짝 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의견을 묵묵히 따라가며 읽다 보면 수긍이 가는 면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우선 저자는 세상의 어떤 글도 논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공적 글쓰기의 논조로 두 가지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첫째는 너도 나도 적당히 다 옳으니 서로의 틀림을 지적하는 건 회피하겠다는 어설픈 관용적 태도이며, 둘째는 다루는 사안의 객관적 진실과 도덕적 옳음보다 특히 요즘 들어 과하게 중요시되고 있는 진정성에 대해서이다.

어설픈 관용적 논조를 삼가고 사안의 객관적 진실을 담보하기 위해, 저자는 가상의 논적을 대상으로 내 관점과 분석의 이유들을 첨예한 수준으로 성실하게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사안의 구체성에 최대한 밀착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나중에라도 사유 과정의 오류를 발견해 내기 쉬울 뿐더러 생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고, 공적 논의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논쟁적 글쓰기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지면을 다 채우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논쟁적 글의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 점이 주장의 설득력을 더 높이고 있다.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주지하다시피, 논쟁적 글의 한계는 바로 독자의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들 수 있고, 선량한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화를 내게 할 여지도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점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논쟁적 글쓰기를 중요시하고 지속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글로 마음을 얻고 변화를 만들기란 어렵다...(중략). 그럭저럭 올바르고 평화롭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일상적 세계에 이의가 제기되었다는 불편함은 때로 그들을 논의의 장으로 이끈다. 내 세계가 잘 못됐다고? 가만히 있던 나를 혼낸다고?...(중략). 평온해 보이던 그들의 세계는 언어로 구체화되어 공적 논의에 편입된다. 그 논의가 스스로의 오류를 인지할 기회를 줄지, 또 다른 논박에 대응하는 경험을 줄지는 알 수 없다. 변한 건 아직 없다. 다만 변화의 가능성은 열린다. 그 작은 가능성이 여전히 나를 쓰게 한다."(133쪽~134쪽)

각종 사회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은 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매를 자처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런 글을 쓰자면 기본적으로 사안을 분석, 평가할 지적 소양은 물론 맷집도 단단해야 한다.

지적 소양은커녕 스치기만 해도 부스러지는 멘털 소유자인 나로서는 언감생심이다. 다만, 이 피곤하고 피로한 일을 그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자처하는 저자에게 뭔가 미안하면서도 안쓰럽고 한편으로 응원하게 되니 읽으면서 내내 복잡한 심경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실험중인 것

이 책이 한 가지 더 참신한 부분은 SNS 시대의 글쓰기를 다뤘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연히 젊은 유저들이 많은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현재는 99,000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그 어느 곳보다 비정치적으로 비춰지는 인스타그램에 저자의 글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저 정도나 된다니! 인스타그램에 어떤 공론의 장을 만들 수 있을지 실험 중이라는 저자의 행보가 매우 신선하여 이 또한 응원하게 된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라는 제목도 단숨에 마음에 탁 들어왔지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도 없지 욕은 먹지' 같은 중간 소제목과 글 전반적으로 넘치는 위트 덕에 끝까지 재미있게 읽힌다. 

이제껏 맛보지 못한 참신하면서도 색다른 글쓰기 책이다. 새로운 글쓰기 책을 찾는 분이라면 적극 권한다. 저자의 글쓰기 비법과 함께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를 다룬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세태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 - 어쩌다 보니 17년차 마감노동자의 우당탕탕 쓰는 삶

위근우 (지은이),
시대의창, 202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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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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