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표지.
한겨레출판
핵심을 꿰뚫는 질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멍청한 질문만 면하자는 마음으로 돌봄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었다. 두 작가님이 쓰신 책과 기사를 시작으로 신문 기사, 논문, 단행본 등을 가리지 않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여러 자료를 봤다. 그렇게 읽다 보니 간신히 돌봄 관련한 주요 현안과 정책, 그에 대한 논의를 아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질문을 짰다.
그렇게 첫 번째 대담을 진행한 뒤 생각했다.
'최대한 많이 개입해보자.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의문이 드는 부분은 계속 묻자.'
편집 과정에서 대담을 대폭 재배치해 독자들이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첫 대담 이후로 나는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질문만 던지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했다. 탈시설이 반드시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고, 돌봄을 말하려면 결국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내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우리가 '왜' 지금 돌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부터 '어떻게' 돌봄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까지, 돌봄을 둘러싼 여러 쟁점에 대해 5번(실제로는 보강 대담을 포함해 6번)의 대화를 나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은 아닐지, 자칫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지 내심 걱정하면서도 적극 의견을 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자료를 읽고 두 분과 대담할수록 내 의견이 생겼다.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아졌다. 돌봄 문제를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하신 분들이 봤을 때는 어설프고 때론 부적절한 의견일지 모르지만, 대담 과정에서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면서 적어도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견해가 생겼다.
두 번째는 두 분과의 대담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지, 가족돌봄이란 미명하에 가족 내의 약자가 어떻게 착취당하는지를 말하면서 우리는 자주 탄식했다. 어떻게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를 진심으로 함께 고민했다.
돌이켜보면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작업했다. 일단 돌봄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나 활동가들에게 대담 진행을 맡기지 않고 편집자가 직접 질문을 짜고 진행을 맡았다는 점부터 그랬다. 질문을 짜기 위해 자료를 읽는 과정도 비효율적이었다.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여러 자료를 펼쳐 놓고 그중에 필요한 부분만 빨리 훑어봤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기사를 읽다가, 책을 읽다가 자꾸만 멈춰서 한숨을 쉬게 됐고, 훑어보는 대신 정독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 비효율적 방식에 여러 장점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라고 믿는다.
극한의 비효율성, 그게 더 매력인 이유
첫째, 다른 사람에게 진행을 맡기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겠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문제의 전문가가 꼭 그 문제에 대한 대담을 잘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연구자가 대담을 진행했다면 대담이 너무 이론에 치우쳤을 위험이 있다. 오히려 내가 돌봄을 이론적으로 잘 몰랐기에 현학적인 이야기로 흐르지 않았고, 돌봄을 잘 모르는 독자의 눈높이에서 대담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둘째, 두 작가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도 워낙 다양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내 경험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작가와 편집자는 보통은 그리 친밀하지 않다.
처음에 아이템을 논의하고 계약서를 쓸 때 한두 번 만나고, 작업 중에는 메일과 전화, 카카오톡으로 소통한다. 책이 나온 뒤에야 다시 북토크 등의 자리에서 얼굴을 본다. 특히 작업 중에는 실무적인 부분만 이야기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그 이상의 깊은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첫 미팅 뒤에도 대담을 위해 최소한 6번은 만나야 했다. 그 몇 번의 '대면'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2021년 8월 24일에 진행한 첫 대담 때는 대담이 끝난 뒤 바로 헤어졌지만, 대담이 진행되면서 같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술도 마셨다.
"시간 괜찮으시면 맥주 한잔할까요?"
자연스럽게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기 시작했다. "솔직히 어느 정당 지지하세요?"부터 "돌봄을 한국 사회의 의제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저도 의사지만 의사들이 돌봄을 너무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같은 고민까지. 그런 고민과 질문에 서로가 좋은 답을 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담을 진행하는 동안 돌봄이라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파트너란 믿음이 생겼다. 그 믿음 덕분에 이 작업이 어렵고 부담스러웠지만,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