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

금융의 중요성·공공성 만큼 높은 책임감 요구돼... 금융권, 당국 모두 절박함 가져야

등록 2024.02.07 10:55수정 2024.02.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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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생계비(긴급생계비) 대출 상담 및 신청을 시작한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대출 상담 안내문이 놓여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3월 21∼24일 소액생계비(긴급생계비) 대출 상담 예약을 받은 결과 예약 가능 인원의 약 98%인 2만5천144명이 상담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지난해 팬데믹 이후 물가와 금리가 상승해 서민들은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금융회사는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고 하여 공공성 논란이 크게 벌어진 일이 있었다. 금융회사의 높은 수익이 경영 혁신이나 만족스러운 금융서비스에 기반한 것이라면 논란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수익이 부동산 담보대출의 이자수익 상승, 금리 상승기의 예대마진 확대 등 자신들이 기여한 것보다 환경변화에 따른 것이 더 크다고 생각된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회사가 고유의 경제적 역할과 더불어 여러 이해관계자에 대한 소임까지 포괄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이 이루어졌다. 금융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사회적 책임에 인색했으나 금융위기로 시민 부담이 가중되면서 사회적 책임경영이 요구되었다. 그에 따라 금융회사는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 및 금융서비스 확대에 관심을 기울였다.

기업은 이익을 내는 활동 자체가 사회에 기여 한다는 '주주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더욱이 금융업은 자격이 있는 한정된 자에게만 허용되기에 많은 특혜가 있고, 소비자 및 기업의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올리고 있어 일반 기업과는 다른 차원의 '마땅히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기업의 CSR 이론에서 많이 인용되는 아치 캐롤(Archie B. Caroll) 교수의 CSR 개념을 원용해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살펴보면, 금융회사로서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책임, 법령을 준수하고 윤리적 경영을 해야 하는 책임 및 사회에 공헌할 책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금융회사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은 리스크를 부담하면서 민간의 투자 활동을 지원하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자본이 필요한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 개인과 기업의 위험을 덜어주는 기능, 소비자의 부를 관리해 주는 기능 등을 잘 하는 것이다. 또한 건전성을 유지해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음으로써 시장의 효율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기에는 금융업이 위험을 부담하며 모험·혁신사업에 자금배분 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러나 금융의 역할이 커지는 금융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복잡한 금융상품을 이용해 리스크는 타인에게 전가하고, 금융 본래의 기능을 하기보다 이익추구의 도구로 활용해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업이 해방이후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루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지만, 그 이면에는 위험관리 실패로 IMF 위기, 저축은행 사태 등을 겪으며 공적자금 투입 등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지웠고, 잘못된 성과보수체계에 기반한 단기이익 추구 영업으로 부실사모펀드 사태 등 여러 시장실패를 발생시켰다.

둘째, 법령 준수 및 윤리적 경영의 책임은 금융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사회의 윤리적 기대에 맞게 합리적인 경영을 하는 것이다. 이는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금융회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회적 책임이다.

그러나 금융회사 직원의 횡령 사고,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한 사익 추구 등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개선보다는 법률회사 등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데 더 신경을 쓰는 듯한 행동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완화 뒤 금융사고 발생, 그에 따른 소비자 피해 후 제도보완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금융회사의 제대로 된 내부통제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 스스로의 개선 노력을 비롯해 당국의 면밀한 정책 및 감독이 필요하다.

셋째, 모든 기업은 사회에 공헌할 책임이 있지만, 금융회사는 소비자의 금융자산을 위탁, 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는 특성이 있어 그 책임이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금융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기도 하지만 공공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금융기관의 성격도 갖고 있다. 일반 국민에게는 은행 등이 단순한 금융회사이기보다는 금융기관으로 인식된다. 이윤 극대화는 경영목표가 될 수 있지만, 존재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가 지난해 설 전날 은행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주택가 지점인 데다 명절 전날이라 창구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여러 노인 고객들이 소액 계좌이체 등을 요구하여 은행원이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빠른 손놀림으로 정성껏 응대하는 은행원의 태도에 커다란 인상을 받았다. 금융회사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금융의 사회공헌 책임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회적 약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포용금융(financial inclusion)적 관점을 생각할 수 있다. 포용금융은 서민의 금융부담 완화, 청년·취약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 취약 채무자 보호를 내용으로 한다. 금융권의 서민금융 공급규모가 2022년 9.8조 원, 2023년 10.7조 원 등 증가하고는 있으나 취약계층의 금융수요, 금융업 성장 규모에 비하면 미흡한 수준이다.

금융위원회에서는 작년 취약계층의 불법사금융 피해를 막기위해 신용점수를 따지지 않고 최대 100만 원까지 대출해주는 '소액생계비 대출'을 출시했는데 신청이 폭주했다. 금융권에서 취약계층의 금융서비스 이용 문턱을 조금만 낮추어도 많은 이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회사의 사회공헌 실적은 업권별 협회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서민금융, 학술·교육 등 6개 분야에 2021년 1조617억 원, 2022년 1조2380억 원의 사회공헌 금액을 공시했다. 그 중 서민금융지원은 보증기관의 보증과 휴면예금이 포함되어 순수한 공헌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은행이 마케팅이나 홍보 등의 목적으로 문화·예술행사 후원금을 내거나 체육구단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포함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생보사들이 출연(2022년 213억 원)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등 3개 기관에서 공동사업을 하고 있으며, 개별 회사에서도 공헌활동을 하고 있으나 그 내용의 편차는 크다. 손해보험협회는 사회공헌협의회를 구성해 공동사업을 추진하나 구체적 활동내역 공시는 미흡했으며, 금융투자협회 및 여신금융협회의 홈페이지에서는 업권의 사회공헌활동을 찾기 어려웠다.

이상을 보면 매년 최고 실적을 경신한다고 알려진 금융회사의 사회공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미흡한 실적이 공시되고 있으며, 그 내용도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등 체계적이지 못한 실정이다.

금융회사는 '취약 채무자 보호'등 업권별 특성에 맞는 분야에 실효성 있는 사회공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이사회 내 사회공헌을 위한 별도의 위원회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업권별 사회공헌 공시체계를 개선하고, 금융회사의 모범사례를 공유하여 회사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등 금융회사의 사회공헌체계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기업의 ESG 경영 활성화를 위한 금융회사의 '지원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환경문제와 관련 탄소배출 기업이 녹색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금조달, R&D 지원, 보험상품 개발, 자산관리 등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시장경제에서 커지는 금융의 비중, 금융의 공공성을 생각할 때 금융회사는 본연의 경제적 역할, 법령 준수 및 윤리적 경영의 책임, 사회공헌 책임 모두에서 일반 기업보다 훨씬 큰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경영시스템이 지나치게 단기이익을 좇고, 경영진의 인식도 높지 않은 상황이다. 임직원의 성과평가에서부터 회사의 수익 기여도뿐 아니라 소비자보호, 취약계층 지원 등 공공성에 대한 평가가 강화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금융회사의 공공성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마지못해 사회공헌금액을 소폭 증액하는 땜질식 처방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활동을 해야 하는 금융회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이행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금융회사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서, 국가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금융권, 당국 모두 절박함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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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에서 30 여년을 근무하고 부원장보를 마지막으로 퇴직했습니다. 건전하고 공정한 금융질서 확립과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조직의 존재이유와 내 본성, 가치추구와의 어울림이 커 업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올바른 금융시장을 위한 고민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이 금융업의 공정성제고를 위한 생산적 논의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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