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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회서 후배가 내 주머니에 넣은 봉투의 정체

10여 년 만에 받아본 손 편지...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등록 2024.03.03 10:35수정 2024.03.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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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의 인사이동은 매우 잦습니다. 과거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상피제도'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상피제도'는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공무원의 출신 지역이나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의 지방관으로 당사자를 발령내지 않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토착 세력과의 결탁을 통한 비리를 애초에 막겠다는 게 근본 취지입니다. 그렇다 보니 경찰공무원은 계급에 관계없이 최소 1년에서 평균 2년 이상이 되면 무조건 다른 경찰서나 다른 지역으로 부서를 옮겨야 합니다. 

경찰관인 저 또한 그래왔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최소 15회 가량의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처음 서울중부경찰서에서 시작해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을 오갔고 최근에는 서울관악경찰서와 서울송파경찰서에서 근무했습니다. 

더욱이 지난해 서울송파경찰서에서는 최일선이라고 말하는 지구대에서 1년 근무하고, 다시 발령을 받아 현재는 기동본부 기동단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동대는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부서입니다. 

지난해에는 경찰서의 지구대와 파출소 중에서 가장 바쁜 곳에서 근무했습니다. 하루 평균 60건 이상 신고가 있는 곳으로, 강력사건 또한 빈번하고 직원들의 평균 연령도 낮은 편이었습니다.

경찰관들 사이 명언 "수갑과 권총 있지만 우릴 지켜주는 건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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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직접 전해 준 손편지 후배의 동의를 얻고 게재합니다. ⓒ 박승일

   
경찰관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수갑과 삼단봉이 있고 테이저 건이 있고 권총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바로 옆에 있는 동료"라는 말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굳건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옆에 있는 동료와 어느 직장보다 상호 간에 관계가 끈끈하고 의리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유난히도 그랬습니다. 이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은 큰 복 중에 하나입니다. 

지난 2월 초 그렇게 정들었던 동료들과의 이별이 또 찾아왔습니다. 저는 현재 '경감' 계급으로 경찰 계급에서 보면 중간관리자이며 팀장급 직책에 있습니다. 20여 년 경찰 생활을 했지만, 제가 항상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가족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 부분을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제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듯합니다. 

얼마 전 최근 근무지에서 저를 위한 작은 송별회가 있었고, 그 자리가 끝나갈 무렵 같이 근무하는 막내 경찰관이 헤어지기 전 인사를 나누다가 제 호주머니에 손을 살며시 넣었습니다. 봉투를 줬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후배에게 "이놈아 뭐야?"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실 상품권인 줄 알고 김칫국(?)을 마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청탁금지법(소위 김영란법)에 따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는 선물을 할 수 있지만 상급자는 하급자로부터 일정 금액 이상 받을 수 없는 제도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제도를 의식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후배에게 그것도 이제 1년여 근무한 후배에게 받는다는 것이 왜인지 모양(?) 빠지는 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배 경찰관은 웃으며 답합니다.

"아니에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혹시 뭐 선물 기대하신 거예요? 조용히 집에 가서 읽어 보세요. 편지예요, 편지." 

그랬습니다. 후배가 준 것은 직접 손으로 한자 한자 써내려간 손 편지였습니다. 그렇게 해프닝이 끝나고 집에 와 후배가 직접 손으로 써준 손 편지를 꺼내 읽어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사실 손 편지를, 그것도 남자한테서 장문의 편지를 받아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소 10년은 더 된 일인 듯합니다.

후배의 동의를 얻고 아래 그 내용을 공유합니다. 힘들었던 지난 1년이 이 편지 한 통으로 모두 보상받은 기분입니다. 앞으로 남은 10여 년의 직장 생활에도 큰 힘이 되어 줄 듯합니다.

좋은 동료를 만나는 건 직장생활에 있어 큰 행운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올 한 해 직장생활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TO. Police officer Park 

'좋은 인연으로 만나 영광입니다.'... 

제가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축하 선물과 함께 주셨던 말씀입니다. 어느덧 저는 시보도 끝나고 정근수당까지 받는 1년 차 경찰이 되었습니다. 팀장님께서 보실 때는 그저 막내겠지만 제 밑에 멋진 후배들도 생겼네요.

종이 한 장에 저의 1년을 다 채우려 마음을 먹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감사함 말고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공무원'이라는 꿈을 이루고 그저 '공무원'으로 이 조직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저에게 '경찰'로 생활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아끼지 않으신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둘이 있을 때 제가 팀장님께 맨날 민원인한테 화내지 말라고 말했지만, 돌이켜보면 주로 제가 위험에 처해있을 때 (팀장께서) 화를 내고 계셨더라고요(사실 돌이켜 안 봐도ㅋㅋㅋ) 아무것도 모르던 초임순경에게 '선배', '동료', '경찰'이라는 의미를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저에게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중략...) 

팀장님! 저뿐만 아니라 다른 후배들에게 더 멋진 경찰로 남아 주세요. 팀장님의 멋진 앞날을 응원하고 저에게 뜻깊은 인연으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 1월경, 후배 OOO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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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직접 써준 손 편지 지난 1년 동안의 직장 생활은 이 편지 한통으로 보상받았습니다.(후배 경찰관의 동의를 얻고 게재합니다) ⓒ 박승일

#박승일 #경찰관 #손편지 #경찰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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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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