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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저는 필수의료 전공의 엄마입니다

의대 증원 '천천히' '살피며' '같이' 고민하면 어떨까요

등록 2024.02.28 11:06수정 2024.03.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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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응급실 의사가 되겠다고?"


나는 '입알못'(입시도 알지 못하는)이었다. 뇌 과학을 공부하고 싶다던 아들이 '현실적인' 방향으로, 의사를 하면서 과학자의 길을 가겠다 했다.

고3 수험생인 그에게 뭘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냐 물었더니 한국에만 계시라(혹 엄마가 필요할 때 달려갈 수 있게) 해서 그리했다. 주말에 아이가 오면 따순 밥을 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마다 대배(오체투지) 백배를 하며 한 해를 보낸 뒤, 그의 의대 합격 소식을 들었다.

입알못은 '의알못'이 되었다. 의대도 알지 못하는 사람. 의대 아니어도 청년들이 힘든 시절이라는 얘기가 무거운 공기로 떠다녔다. 80년대, 대학만 나오면 형편없는 학점을 받아도 웬만하면 쉬 직장을 구했던 그때랑은 분명 다른 세상이 그들에게 놓여 있었다.

의알못은 '응알못'이 되었다. 응급의학과도 알지 못하는. 아들은 인턴을 끝내며 응급의학과를 지원했고, 오는 3월부터  출근을 앞두고 있었다.

"무슨 전문의 그런 거 안 하고... 하필 왜 응급의학과?"


2. '복귀 안 하면 잡혀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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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맞서 의협-전공의 집단행동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맞서 의협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응급차가 환자이송을 준비하고 있다. ⓒ 이정민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남부아시아의 끄트머리 작은 도시. 한낮의 볕이 날카로워 제법 길게 나무 그늘에서 다리쉼을 하며 손전화를 열었다.

명절에나 보는 집안 사람의 문자가 한국에서 날아와 있었다. 의대 증원 2천 명으로 촉발된 사태에 이어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기사였다. 여러 벗들의 문자도 쏟아졌다. 그저 한 줄 보냈다.

'저 알아 하겠지요.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것임.'

산을 내려와 뉴스들을 보았다. 환자는 어쩌라고 저리 나왔을꼬? 의사는 돈만 아는 나쁜 놈들이고, 의대 증원한다니 저들 밥그릇 앗을까 반대하는 거라고들 했다. 정말 그렇단 말인가?

정부는 '3월부터 미복귀자에 대한 면허 정지 처분과 관련 사법절차 진행이 불가피하다'며 내일인 29일까지 복귀할 것을 전공의들에게 요구했다.

정부는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그리하면 정말 지금보다 더 좋은 의료체계가 만들어지는 걸까? 참말 좋은 정책이면 전공의들도 알아듣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은 왜 사직서를 냈단 말인가?

정부가 저리 서두르며 몰아붙이니 이상한 생각까지 든다. 4월 총선이 다가오는데 혹시 그게 이유는 아닌지, 아니면 무언가 중차대한 문제가 있어서 국민의 관심을 이것에 붙들려는 의도는 아닌지...

'힘없는 전공의 앞세울 게 아니라 개원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의사들이 나서라.'

어느 이가 한 모퉁이에 쓴 댓글을 읽었다. 더구나 전공의라면 의사 집단의 막내인데, 의료계 어른들은 뭐하고 저이들이 저러고 있을까? 어쩌자고 어른들은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걸까? 전공의들인들 환자를 떠나기가 쉬웠을까?

부모 된 죄라는 말이 있다. 다 자란 자식 일을 직접 묻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가장 답답한 건 당사자들일 것이고, 그들이 지금 누구보다 복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니까.

3. "의사 늘면 좋지 않아?"

의사가 늘면 좋을 것도 같다. 의사를 더 쉽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진료비도 더 낮아지지 않을까? 전공의 환경도 좋아지지 않겠는지. 필수의료, 지방의료에도 없다는 의사들을 채울 수 있지 않을지? 정말 그럴까?

몇 억을 주어도 의사를 구할 수 없다는 지방의료원의 하소연이 있었다. 3억? 4억? 세상에! 의사들이 배불러 그렇구나,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들이 있었다. 한 과에 기껏 두엇인데 혼자 일하면 24시간 늘 대기상태여야 하고, 의료사고라도 나면 혼자 그 책임을 다 져야 하고, 아이가 있는 이는 교육 때문에, 미혼 남자 의사라면 미혼 여성을 만나기도 힘들어서, 또 지방은 원장의 힘이 절대적인데 원장 갑질이 문제라서...

의사가 늘면 전공의들도 좋지 않을까? '전공의들을 갈아 대학병원이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 80시간 이상씩 저임금에 일하고 있다. 의사가 없어서? 아니었다. 대학병원들은 수익을 위해 전문의를 쓰지 않고 대신 전공의들로 채워 병원을 꾸린다 한다. 전문의를 더 채용해야 한다면 내보냈던 이들을 불러도 되는데, 그들은 두고 의사를 더 만든다고? 

의사가 많아지면 필수의료도 해결되지 않을까? 현장의 여러 글들을 읽는다. 아니란다. 금이 간 항아리에 물을 붓는다고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사가 늘어난다고 그들이 필수의료로 가지는 않는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소아과 줄이 길었던 것은? 그 역시 의사가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었나?

정작 소아과 병원이 문 닫았다는 소식이 더 흔했다. 아이들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고, 소아과도 다르지 않았다. 가뜩이나 지방에 사람이 주는데, 있는 이들도 아프면 서울로 가는 것도 그 결과에 일조했다 짐작된다.

의사가 넘치면 진료비가 싸지지는 않을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은 모든 가격이 나라에서 정해져 있다(미용과 비급여 시장은 제외). 한정된 자원(건강보험료)을 분배해서 공급가격을 정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의사가 늘면? 전체 건강보험료 청구 수도 는다. 그런데 건보료는 한정돼 있지 않은가. 그러면 건보 보장항목을 줄이거나 일부 항목의 급여비율을 조정해야 하는데, 그러면 환자부담 실질 의료비가 오히려 증가하고야 만다!

그러니까 증원한 의사 수만큼 의료비도 늘게 된다 추측 가능하다. 나아가 병원의 영리화(민영화는 이미 오래전에 되었다)는 강화되고, 그리하여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어쩌면 빅5 병원에 더는 서민이 접근 기회조차 갖지 못할 날도 얼마든지 올 수 있다.

4. "의사 증원 찬성이야!"

현 정부의 지지율이 의사 증원 정책 제안으로 퍽 올랐다는 뉴스를 본다. 현 정부 정책에 다른 거 다 반대해도 이 정책만은 지지한다고도 했다. 돈만 아는 의사들, 선민의식의 그들을 이 기회에 혼내주란다.

의료정책도 잘 모르는 나는, 그게 좀 이상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문제가 생기면 그걸 아는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모으고 하면 될 텐데, 더구나 한 분야의 인력을 1.7배도 늘인다고? 교수는 어디서 어떻게 보충하고, 임상실습은 또 어디서 하지? 전문의 양성에 10년이 넘어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필수의료는 어쩌라는 것일까?

수가 체계를 손 좀 보면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건드린다. 그건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는 말이라 정치인은 절대 선거권을 가진 국민에게 건보료 올리자고 말하지 않는다. 표 떨어지니까.

병원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인건비를 절감해서라도 수익을 내야 하니까. 아, 말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대학이다. 그들은 인구절벽으로 그렇잖아도 학생이 주는 데 의대에는 학생들이 오니까 증원을 대환영한다.

여러 나라에서 살거나 머물렀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중앙아시아, 핀란드 ... 아플 때 병원을 가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 비싸서 참는 쪽을 택하기도 했고, 지나치게 오래 기다리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한국행을 결정하기도 했다.

좋은 치안 못지않게 병원의 낮은 문턱은 한국 삶의 매우 커다란 장점이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의료비가 오르는 요인을 억제했기 때문일 테고, 그것에는 3분 진료하면서 많은 진료를 본 의사, 주 88시간 이상 최저임금 받으며 대학병원을 돌린 전공의, 사명감으로 필수의료계를 떠받치던 의사들에게 빚진 바 크다.

5. "필수의료에 목숨 바칠라구요!"

아들이 무슨 대단한 사명감으로 응급의가 되겠다고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이 그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가 1년 동안 여러 과를 돌며 수련할 때 응급실에서 내게 보내온 그의 글과 음성은 유달리 특별했다. 세월호와 이태원 사태를 보며 재난의학에 관심을 갖던 그였다. 마침내 그는 응급실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필수의료에 목숨 바치기로 했어요!"

너무 신파조라 웃겼다. 무슨 목숨까지 바치냔 말이다. 하지만 고마웠다. 그가 바칠 시간이 가져다줄 그의 뿌듯함이 그가 할 고생을 보상해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잠을 못자 푸석거리면서도 환자들을 안타까워했고 나아진 환자들이 그에게 하는 감사 인사를 내게도 전해줄 때 나는 그가 괜찮은 줄만 알았다. 내 생일에 큰돈을 보내주었을 때 의사라 제법 많은 월급을 받아 그런 줄 로만 알았다. 아, 나는 응알못이었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고 싶은 대로 원 없이 햐. 우린 늘 새로 시작할 수 있음!'

눈치 보지 말고 옳은 발언을 하고 바람직하게 움직이라는 응원이었다. 사실 전공의들의 줄 이은 사직서에 좀 놀랐다. 남의 일, 참 함부로 말할 거 아니다. 그들의 처지를 알면, 그 열악함을 알면 더욱 놀란다. 거기에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미래(그것을 꼭 돈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가 없는 곳이라는 절망이 있었다.

나는 아들이 농부가 되기를 바랐다. 아들은 긴 시간 제도학교를 다니지 않고 멧골에서 함께 살며 같이 일하고 배웠다. 다시 그래도 좋겠다. 우리는 얼마든지 재밌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길은 많다'고 말했지만 그 분야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공부했던 전공의들이 다른 길을 가는 건 안타깝다. 나는 그가(또한 그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정녕 바란다. 그 현장이 근로자가 안전하고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는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곳이면 좋겠다. 다른 곳 역시 그런 일터이기를 바라듯이.

안다, 정책이란 게 그리 쉽지 않다. 여러 가지가 걸릴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가지고 얘기하자는 말이다. 의사만 해도 여러 층의 구성원이 있다 들었다. 병원에 남은 전문의는 병원의 수익 요구에 무리하고, 떠난 전문의 자리를 값싼 전공의들로 채우고, 이제 '사람 목숨으로 돈을 버냐'며 정부가 나서서 의사 임금을 낮추게 하기 위해 의대를 증원하겠단다.

수련 뒤 그나마 전문의라도 따면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는(이 역시 돈만이 조건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이 그들의 고생을 그나마 어루만져주었을 것을... 왜 이 국가(사회)는 그들에게만 사명감을 강요하는가! 의사 집단의 다양한 각 주체들과 보건복지부와 시민과 환우 가족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협의체가 의대 증원을 '천천히' '살피며' '같이' 고민하자, 부디.

6.
더하여, 공공의료를 국민 모두의 부담으로 지켜내겠다는 마음들도 이 기회에 모울 수 있다면 참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경향신문에도 보냅니다.
#전공의파업 #의대증원 #필수의료 #의사증원 #의사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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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깃들어 아이들의 학교이자 어른들의 학교이기도 한 작은 배움터를 꾸리며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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