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도성마을에는 1200여명의 주민이 살았지만 현재 100여명만 남아있다.
오문수
땅을 불하받은 도성마을 정착자들은 이후 이곳에서 축산업과 농업 등을 하며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 도성마을은 마을 조성과 동시에 도성조합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구성해 사료·비료 등 농축산 관련 물품을 공동 구매하거나 공동 판매해 자립 기반을 넓혔다.
육군 전역 후 형님이 병역 기피자로 끌려가자... 형 이름으로 해병대 입대
도성마을 정착 초기에는 어려웠지만 애양원에서 만난 아내와 열심히 일해 번듯한 집도 있는 김아무개씨(88). 젊었을 적에 목포 시내에서 "좀 놀았다"고 말한 그는 "목포 건달인 용팔이도 잘 알고 가수 남진이는 후배"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두 번이나 군대에 간 사연과 아내와 함께 도성마을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해줬다.
김아무개씨가 처음 육군에 입대한 병적증명서를 보면 그는 1936년생이다. 그는 1956년 11월 30일에 육군에 입대해 1957년 6월 29일에 의병 제대했다. "발병했었느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았지만 몸이 조금 이상해 의병 제대했다"고 대답했다.
목포 해변가 술집을 전전하며 놀던 그가 어느날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큰일났다! 형이 병역 기피자로 경찰서에 잡혀갔다"고 했다. 경찰서에 갔더니 '목포해병대 수용소에 가둬 놨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특정한 직업이 없었고, 형이 인쇄소를 운영해 부모님과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형이 군대에 가면 온 가족이 굶어야 할 판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해병대를 찾아갔다. 막사에 갔더니 800명 정도가 잡혀와 있었다. 해병대 담당자를 찾아간 그는 집안 사정 이야기를 하고 "형 대신에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한 뒤 입영열차가 떠나기 직전에 형님 윗도리를 갈아입고 진해 해병대 훈련소로 갔다.
그가 보여준 또다른 병적증명서에는 형의 출생 연도가 1933년으로 기록돼 있다. 형의 이름으로 1958년 2월 3일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1962년 7월 28일 의병 제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