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작업하던 엔진톱을 잠시 멈추고 귀마개를 내려놓았다.
조명신
공휴일이던 삼일절에 이른 아침부터 작업복을 입고 마당에 나섰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싸늘한 날씨였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몸이 금방 데워진다. 엔진톱 굉음 탓에 귀마개를 하고 뿜어져 나오는 나뭇가루를 막기 위해 마스크까지 썼더니 마을 할머니께서 마당에 들어선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부랴부랴 엔진톱을 끄고 인사를 드리니 말없이 비닐봉지를 내미신다. 할머니는 지난해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신 후 홀로 지내신다.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시는 듯해 가끔 이런저런 일을 도와드리곤 했다. 그래봐야 불이 켜지지 않는 가스레인지를 손본다거나 간혹 장을 봐 드리는 사소한 일들이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수확한 농작물을 슬그머니 두고 가신 적도 많았다. 지나다니시며 무심한 듯 마늘쫑과 호박을 가져다주셨고 이제 막 타작한 서리태를 건네셨다. 그것이 마트에서 얼마에 팔리는지와 관계없이 모든 수확물은 귀하다. 더위와 추위에 맞서 올곧이 정성을 다해 땀으로 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자르느라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내게 할머니가 내민 비닐봉지에는 음료수가 세 개 들어있었다. 마트에서 뭔가를 사 올 요량이면 오히려 내가 사드려야 할 터인데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무엇인지 여쭤보니 예의 그 충청도 화법이 돌아왔다.
"그동안 도움만 받고 말도 없이 가면 서운하잖어."
"어디 가시는데요?"
"죽을 날 받아 놓고 왔어."
너무 놀라 무슨 말인지 짐작도 하기 어려웠다. 갑자기 무슨 불치병이라도 걸리신 것일까 싶어 차근차근 질문을 이어갔다. 공휴일이라 방문한 자녀와 함께 읍내에 가 영정사진을 찍고 오신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영정사진을 마치 사망선고로 받아들이신 듯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이제 석 달 남았다'라고 하셨다.
인생이 무상한 듯 "기가 맥혀"라는 말만 되뇌는 어르신께 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어 이제 갈 때도 되었다'는 이야기, '그동안 도움받은 게 많은데 말도 없이 가버리면 욕하지 않겠나 싶어 이거라도 들고 왔다'는 말이 이어졌다. 먹먹한 말과 회한에 잠긴 목소리, 순간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하고 마음은 어떻게 다잡아야 할지 길을 잃었다.
할머니의 쓸쓸한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