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월세방
최혜선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게 문제였다. 체코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가 되면 해도 일찍 지고 비도 자주 오고 한마디로 우울한 날씨라고 해서 또 한 번 남편이 예전처럼 울적해질까 봐 불안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 걱정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 체코에 도착한 날 통화에서 남편은, 텅 빈 월세방에 83킬로그램의 짐과 함께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고, 비행기를 바꿔타고 17시간을 날아와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무척 우울하고 외로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옛말처럼 없는 듯 숨어있던 걱정이 순식간에 덩치를 키워 마음 속을 장악했다.
그 와중에 텅빈 월세방을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일, 배정받은 연구실을 쓰기 좋게 정리하는 일, 수업을 준비하는 일, 매 끼 식사를 차려먹는 일, 검도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일들에 몰두하면서 도착 첫날의 우울함과 외로움은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이 보였다. 신경 써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줄지어 있자 그것을 해결해야 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허우적거릴 새도 없이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큰그림인가 싶기까지 했다.
나를 살리는 '일'
그렇게 첫 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을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후, 두 번째 학기를 위해 체코에 입국해야 할 때도 남편의 한숨 소리에 땅이 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면 잘 지낼 것을 믿었다. 체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또 다시 그를 살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편은 조금 더 바빠졌다. 어떤 날은 릴레이 회의가 있어서 잠깐 쉬는 시간에 짬을 내어 하루의 마지막 통화를 하기도 한다. 남편이 "나 이제 회의 들어가야 돼"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을 때면 격세지감에 씨익 웃음이 난다. 그건 그동안 내가 주로 하던 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