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9일 오후 2시께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스튜디오 뿌리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상진 애니메이션 총감독이 여러 레퍼런스 이미지를 띄워 설명하는 모습. 해당 이미지는 게임사가 시안의 형태로 뿌리에 전달한 콘텐츠로 이른바 '집게손'이 포함돼 있다.
김화빈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개발자 여성 C씨도 1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2016년 사상검증 초기 때는 (그나마 직장인 어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면, 지금은 '페미가 게임을 망친다'는 직장 동료의 말을 지나가며 들을 정도"라며 "전보다 심리적 압박을 훨씬 많이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사상검증으로 게임산업의 해외 경쟁력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이른바 크런치모드(마감 시한에 맞춰 장기간 초과노동을 계속하는 행태)를 당연히 여기는 노동환경과 폐쇄적 조직문화 또한 여전하다는 증언도 나왔다.
A씨는 "수출을 위해 퍼블리셔(유통사)를 접촉하면 가장 먼저 받는 피드백이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해외에선 사용자가 인종·성별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하거나, 다양성을 이미 반영한 캐릭터를 내놓는데 한국은 '여성 캐릭터를 왜 야하게 그리지 않았냐', '집게손이냐 아니냐'로 싸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웃기지만 게임업계 직원 중 스스로 회사에 속한 노동자로 인식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이 개발 프로젝트에 소속된 구성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정규직인데도 프로젝트가 끝나면 전환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자력으로 (같은 회사 내) 다른 프로젝트 팀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은 회사더라도) 팀별 경쟁이 심하고, 윗선 판단으로 프로젝트가 불시에 접히기도 해 노동 안정성이랄 게 없는 곳"이라며 "강도 높은 노동에 야근도 잦으며 고립돼있어 사상검증이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고 전했다.
C씨는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청이 (제한적이지만) 게임업계 업체에 대한 (감정노동 보호조치 위반 여부) 점검을 시행했다"며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예전엔 슬쩍 넘겼던 문제들도 제대로 대응하고, 막말 등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솔직히 상시적으로 근로감독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당시 서울지방노동청은 서울 소재 5인 이상 게임업체 523개소(자율점검)와 10개소(특별점검)를 감독해 이 중 3개소를 행정조치 했다.
남성도 마찬가지 피해 "전방위적 수정 요구"
이같은 증언과 피해 사례는 남성 노동자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10년 차 이상 시니어 게임 기획자인 남성 D씨는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남성도 사상검증의 간접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업계 고위 관리자들이 '페미니즘에 동의하냐'며 질문하는 등 동조하라고 압박한다. 또 사상검증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18년 차 시니어 게임 프로그래머인 남성 E씨도 "사상검증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예전엔 콘텐츠를 수정하란 압박은 없었는데 지금은 전방위적으로 콘텐츠를 수정하고 개발 때부터 조심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나는 남성이어서 여성보다 부담이 덜하다"며 "개인적으로는 (여성 동료들에게) 버텨달라고 말하는 것도 주제넘다고 생각한다.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