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시상자 키 호이 콴을 지나치는 모습을 보이자, 누리꾼들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엠마스톤의 ‘패싱’이 노골적으로 시상자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며칠 전 진행됐던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이 때아닌 인종차별 도마에 올랐다. 전년도 수상자로부터 남우조연상을 받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시상자인 키 호이 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트로피를 낚아채듯 받아가며 포옹이나 악수 등 감사의 예를 표하지 않아서 논란이 된 것. 그는 반면, 키 호이 콴 옆에 서 있던 다른 백인 배우들과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엠마 스톤 역시 전년도 수상 배우인 양자경(량쯔충, 미셸 여)이 전하려는 트로피를 백인 배우 제니퍼 로렌스를 통해서 전달받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고 공식 시상자인 양자경에게 어떤 예우도 하지 않았다(후에 양자경은 엠마 스톤과 포옹하는 당시를 촬영한 사진을 본인 인스타에 올리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엠마 스톤은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
수상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수상으로 인해 당황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둘 다 '시상자를 무시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 점, 공교롭게도 두 시상자 모두 아시아계 배우였다는 점'에서 영 석연치 않다. '수상자인 백인 배우들의 아시아계 패싱(Passing),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관련 기사 :
오스카 로다주·엠마스톤 '패싱 논란', 봉준호 말이 떠올랐다 https://omn.kr/27rjy).
이를 두고 의도적으로 차별했다기보다 은연중에 일어난 '미세한 공격이나 차별(micro aggression)'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는 노골적인 폭력이나 혐오성 차별은 아니지만, 당사자로서 느끼기에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차별적인 행동을 말한다.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내가 무시당한 것 같기는 한데 대놓고 뭐라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정작 기분은 나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양인 외모 비하하는 서양인의 제스처
인종차별?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 해외여행 중에 몇 번 당한 기억이 있다(지난해부터 300일 동안 19개 나라 67개 도시를 돌아다니고 올해 초 귀국했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트램을 타고 이동 중에 차창 밖으로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웃으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랬더니 그중 하나가 두 손가락으로 눈을 양 옆으로 찢는 동작을 하는 게 아닌가.
앗, 이건 바로 말로만 듣던,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제스처인 일명 '눈 찢기(칭키 아이, Chinky eyes)'? 순간 내심 놀라고 당황했지만 내가 탄 트램은 이미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졌지만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순식간에 상황이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