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도 빌런

사이버 렉카 콘텐츠를 보는 나... 그것에 대한 반성

등록 2024.03.19 09:34수정 2024.03.1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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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고 싶은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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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 픽사베이

 
스마트폰이 더 이상 그냥 "전화기"가 아니게 되면서, 나는 숨기고 싶은 게 조금 많아졌다. 그중에는 사적인 메모, 지인과의 대화 내용이 있지만, 특별히 중요한 것도 아닌데 남들과 공유하기 꺼려지는 게 하나 더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 피드. 피드에는 일명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랜덤하게 뜨는 콘텐츠도 있지만, 대개는 내가 봤던 영상과 가장 비슷한 것들을 추려내 추천을 해준다. 이 추천 목록에서 나 자신에게조차 들키면 낮 뜨거워지는 게 바로 '사이버 렉카' 영상이다. 사이버 렉카란 남의 불행이나 사고, 실수, 결점 등을 인터넷상에 공론화하고 이슈거리로 만드는 콘텐츠다. 

'유명인 A씨 지인의 폭로', '나는 솔로 이번 기수 과거 사진' 등 보기만 해도 자극적인 썸네일은 추천으로 뜨는 기타 유익한 수십 개의 영상을 제치고 가장 먼저 클릭하게 된다. 늘 보고 나면 마음이 찜찜할 걸 알면서도, 매번 지나치지를 못했다. 적어도 난 이 영상에 동조하지는 않았으니까, 댓글도 단적이 없으니 악플러보단 나은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그러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셀러브리티>라는 시리즈를 보게 됐다. 일명 "셀럽"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특유의 옷 입는 센스와 유명해지기 위해서라면, 위험한 일도 마다않는 독기를 지녔다. 그리고 결국엔 인스타에서 파란색 인증 마크를 단 유명인이 된다. 하지만 '무리한 선택'으로 인해 그는 한순간 모두에게 비난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응원해요!' '닮고 싶어요, 언니!' 하며 댓글로 언제나 주인공 편이 되어줄 것만 같던 팬들은 작은 사건 하나로 금세 태도를 바꾼다. '역시 관상은 과학', '어쩐지 쎄하더니 이럴 줄 알았다'와 같은 비난 댓글을 시작으로 SNS에는 주인공을 조롱하는 사진과 영상이 넘친다. 또 그 밑에는 수백수천 개의 동조하는 악플이 달린다. 드라마지만 이 장면만큼은 현실과 정말 소름 끼치게 닮아있었다. 항상 의아했다. 도대체 이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누구고 또 왜 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검은 휴대폰 화면 속 내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평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극적인 썸네일의 영상을 클릭하는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마도 나의 내면 깊은 곳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영상을 조용히 보는 나와 짙은 소음 같은 악플을 남기는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사람들의 관심은 조회 수로 이어지고, 이는 또다시 무분별한 추측 영상을 재생산하게 한다. 누군가를 헐뜯고 파헤치는 영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유명인 즉, 루머의 대상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엔 유명인 삶의 명암을 보여주는 드라마인가 싶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보니, 유명인 곁에 있는 팔로워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건강하게 팔로우한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게 됐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끌린다고 한다. 지금 내 옆에 아무리 화려한 꽃밭이 있어도, 주위에 큰 자동차 사고가 나면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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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박규영은 <셀러브리티>를 통해 화려한 셀럽으로 변신했다. ⓒ 넷플릭스


인플루언서란 영향을 끼치는 사람


바로 그 점을 이용한 매스미디어인 뉴스, 광고가 우리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의식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쉽게 자극적인 것만 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극적인 콘텐츠는 해당 유명인에게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비슷한 수준의 콘텐츠가 더욱 많아짐으로써 온라인 환경이 악화되고, 결국엔 콘텐츠를 이용하는 나에게도 해로운 일이 된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다. 그 영향이 선할지 악할지는 각자의 의도에 달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사이버 렉카 역시 일종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중에는 정말 공론화 시켜 경각심을 가져야 할만한 사건을 다루는 인플루언서도 있다.

그렇다면 좋은 팔로워란 뭘까. 이 역시 각자의 기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좋은 팔로워란 자신에게 유익한 정보와 해로운 정보를 구분할 줄 알고, 인플루언서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지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스스로를 좋은 팔로워라 자신하진 못한다. 다만 어떤 논란에 모두가 비난을 그치지 않을 때, 비난과 피드백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인 비난은 그저 감정 해소일뿐, 듣는 상대에게도 비난을 뱉는 나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세상은 반짝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요즘 세상엔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줄여주는 SNS라는 통로가 존재한다. 화려한 옷을 입고 근사한 곳에 들러, 일상을 공유하는 빛나는 사람들, 그들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두를 지켜보는 구경꾼. 그동안 난 세 번째 그룹에 속했다. 훗날 내가 또 어떤 그룹에 속하고, 자리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난 앞으로도 조용한 관찰자로 때로는 작은 지지자로 활동할 것 같다. 그러다 가끔은 그 누구에도 이롭지 않은 콘텐츠를 다시 소비하기도 하겠지만. 날 위해, 내가 이용할 온라인 세상을 위해 매번 의식을 갖고 선택하기로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빌런

스텔라장이 부른 '빌런'이라는 노래가 있다. '어떤 것은 검은색, 어떤 것은 하얀색, 색안경을 끼고 보면 어떡해. 넌 착한 사람이고, 걘 나쁜 사람이고, 재미없는 너의 세상은 흑백. I'm a villain, 왜 아닐 거라 생각해. 아주 못돼먹은 작은 악마 같은 나인걸 몰라. You're a villain, 왜 아닐 거라 생각해. 미처 몰랐던 악마가 네 안에 숨 쉬고 있어.' 어쩌면 이 노래 가사처럼 우리 모두는 빌런의 면모를 조금씩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누군가는 드러냈고, 드러났고,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온라인 세상에서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싫어하게 된 사람이 있을 때 나 자신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저게 저 사람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그리고 나 역시 빌런일 때가 있다고.
#사이버 #렉카 #댓글 #악플 #셀러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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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번역가ㅣ밤에는 작가ㅣ곁에는 러시아에서 온 쿼카. 그날 쓰고 싶은 말을 씁니다. 어제의 글이 오늘의 글과 다를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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