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곳곳에 중국 물건의 흔적들, 지금도 배송되어 오고 있는 중이다. 남편아, 제발 멈추어다오.
조영지
매일 밤 남편은 침대에 누워 알O 사이트에 들어가 아이쇼핑을 즐긴다. 그러다 다짜고짜 내게 '이거 필요 없냐'라고 묻는다. 나는 심드렁하게 필요 없다고 하는데, 그는 "아냐, 사놓으면 필요할 거야"라며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러버린다. 그리고는 꼭 이 말을 덧붙인다.
"에이, 그래봤자 n천 원인데 뭘."
얼마 전엔 남편이 알O에서 우리 가족의 핸드폰 케이스를 주문했다. 그런데 받고 나서 그립감이 좋지 않아 별로라고 했더니, "그럼 다른 걸로 또 사지 뭐"라며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남편의 손을 부여잡고 아니라고, 괜찮다고,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고, 극구 말렸는데... 사실 모를 일이다. 지금 지구 어디메쯤에서 나의 새 핸드폰 케이스가 날아오고 있는 중인지.
친구도 알O에서 옷을 열 벌 넘게 샀는데 그중 두어 벌만 건지고, 나머지는 나눔을 하거나 결국 버렸다고 했다. 실제로 당근에서 알O에서 산 제품이 나눔으로 올라오고, '알O, 테O 추천 아이템' 같은 정보들이 자주 노출되는 걸 보면 중국 쇼핑 플랫폼이 우리 일상에 깊이 침투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이 저렴한 가격, 근데 이거 이대로 괜찮을까
다들 이렇게 거침없이 구매를 하는 것은 믿을 수 없이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친구가 산 옷도 한국보다 50% 가까이 저렴하고, 남편이 사는 물품들도 대부분 몇 천 원선으로 다이소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무려 배송비 포함가인데도 말이다. 요즘 손 떨리는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거저나 마찬가지다. '이 가격이 말이 돼?'라며 속는 셈 치고 구매를 하게 된다. 남편의 시작도 딱 이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싸다 보니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무 쉽게 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만 건져도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다들 구매 결정을 한다. 사고, 버리고, 사고 버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생산과 소비가 원활해야 경제 활성이 된다지만 멀쩡한 제품도 단순한 취향 문제로 쉽게 폐기를 하니 지구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싼 가격에 시장 생태가 망가지면 국내 시장은 또 어떻게 되려나.
최근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아네뜨라는 덴마크 할머니의 생활 모습을 작가의 시선으로 밀도 있게 관찰한 에세이다. 그중에서도 덴마크인들의 물건에 대한 철학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는 유산이라 하면 당연히 부동산, 돈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덴마크에선 돌아가신 분이 쓰던 가구, 시계, 소품, 옷 등... 사랑하던 사람이 쓰던 물건을 유산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주인공 아네뜨 집 역시 위대한 유산으로 꾸며져 있었다.
증조할머니의 책상을 손녀의 작업대로 쓰고, 아버지가 만든 소품들이 집 안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이야기 같았다. 이야기가 담기고 손때 묻은 물건들은 어떤 신상품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은 플리마켓에 팔거나 교환을 한다. 덴마크에선 이렇게 물건들이 쉽게 버려지지 않고 순환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