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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미스터리, 왜 농민들은 보험을 안 들까?

비현실적인 보상기준에 '무용지물', 보험사는 난색... 정치가 실효성 높일 대책 마련해야

등록 2024.03.27 10:37수정 2024.03.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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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6월 구인모 거창군수가 우박 피해 현장을 방문한 모습.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 ⓒ 거창군청

 
미스터리였다. 농작물 재해보험, 기후위기가 매년 계속되는 이 시대에 누구라도 농작물 재해 보험을 눈여겨볼텐데, 보험료가 비싼 것도 아니고 정부가 보험료의 절반을 대주고 나머지는 지자체가 부담해서 본인 부담은 10% 정도만 내면 되는데 왜 농민들의 재해보험 가입은 20년이 넘어도 아직 절반도 채 안될까?

지난해 10월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농협중앙회·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지면적 대비 가입면적 비율로 계산한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45.2%였다.

그 이유에 대해 지난 25일 <오늘의 기후>(OBS 라디오)에 출연한 24년차 유기농 배 과수농민 김상기씨는 이렇게 말했다.

"과수원을 거의 폐원할 정도 되어야 보험금을 받아요. 사실상 무용지물이죠."

농사현장에서는 보험으로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실제로 관련 기사와 자료를 살펴봤더니, 이상기후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최근 몇 해간 농작물 재해보험의 실효성에 관한 문제제기가 거의 매년 계속되어 왔다. 이런 문제, 저런 문제 많은데다 복잡한 보험요율까지 들어가면 머리가 아파지기에 대표적으로 딱 두 가지 사례만 뽑아봤다.

ⓛ 자기부담금

자기부담금이란 손해액의 일부를 보험가입자 본인이 감수하도록 하는 제도다. 도덕적 해이를 막고 보험가입자의 피해 예방 노력을 촉구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지금의 기후위기 피해가 농민 개개인이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고, 현실적으로 부담금이 너무 높아 보험금 수령을 힘들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보자.


자기부담금 20% : 사과 100개 중 30개가 떨어져 손해를 입었는데 그 중 20개는 내 부담이고 나머지 10개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
자기부담금 30% : 사과 100개 중 30개가 떨어졌는데 30개 모두 내 부담으로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뜻

그렇다면 현재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들의 실제 자기부담금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놀랍게도 40~50% 수준이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 서귀포시)이 농업정책보험금융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농작물 재해보험 지급현황' 자료에 따르면, 원예시설과 버섯을 제외하고 농작물 재해로 인한 손해액(6조1507억8100만원) 중 자기부담금(2조6808억3800만원)의 비율이 43.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농촌경제신문, 2023.10.26)

지역별로 제주도가 자기부담금 비율 50.2%로 가장 높았고 강원 49.2%, 경기 47.7%, 전북 46.6%, 경남 45.2%... 가장 낮은 경북이 40.2%였다. 이렇게 높다보니 정말 과수원을 폐원할 정도가 아니면 보험료 수령이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형평성, 같은 농업 분야에서도 축산 농민들이 드는 가축 재해 보험(자기부담율 11.5%), 농기계 종합보험 (7.6%)와 비교해도 턱없이 높은 부담이었다.

② 우박 맞은 사과에 대한 산정방식

피해 조사 산정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표적으로 우박 맞은 사과. 5-6월 갑작스런 우박으로 사과 농사에 피해가 많다는 뉴스가 많이 나온다. 실제로 현장에서 우박 맞은 사과는 조금만 상처가 나도 제 값을 받지 못해 손해로 이어진다. 상처 난 자리에 한 여름 탄저병균이 들어가 또 다른 감염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우박 맞은 사과를 빨리 처리하고자 하는데, 우박 피해에 관한 보험 조사 방식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1차로 육안 조사 후 정확한 보상을 위해서는 사과 수확기까지 사과를 나무에 달아놓아야 한다.' (농민신문, 2023.12.4)

이렇다보니 탄저병 피해를 막고자 우박 맞은 사과를 일찍 따버리면 보상을 못받게 된다.

피해 정도에 대한 피해인정계수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 정도에 따라 100%형·80%형·50%형·정상과실로 나누고 차등 보상하는데, 농민들 입장에서는 우박을 한번 맞았든 두번 맞았든 일단 한번 맞으면 정상 과일로 출하하지 못해 손해가 발생하는데 이렇게 차등지급을 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거다.

실제로 우박을 4-5개 맞았는데도 육안으로 보이는 상처가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피해계수를 80% 혹은 50%로 낮게 잡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는 '우박 피해 보상 받으려면 사과가 우박 맞고 아예 쪼개져야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온다.

"우박피해가 뉴스에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우박을 맞아도 보상 받을 게 하나도 없어요. 우박피해를 100% 인정받으려면 사과가 우박을 맞고 쪼개져야 해. 예를 들어 한 대를 맞았다, 그럼 아직 50%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상처 난 그 사과가 출하가 될 수 있습니까?" (한국농정신문, 2024,1,1)

보험업계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2001년 3월에 우리나라에 농작물 재해보험이 도입되었는데 그 때는 정부지원 아래 민간 보험사들도 여럿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를 연달아 맞으면서 민간 보험사들은 안되겠다며 발을 뺐고, 현재는 농협 혼자 농작물 재해보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농협 또한 자기부담금을 낮췄다간 소액 요청을 감당할 수 없을거라며 자기부담 완화에 난색을 표하는 실정.

정리하면, 갈수록 커가는 기후위기 농업 피해 속에 보험사는 수지타산 안 맞는다며 난색을 표하고 농민들은 농민대로 보상 못받는다며 난색을 표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우리보다 농작물 재해보험의 역사가 깊은 미국에서는 '대재해 보험법'을 제정해 행정수수료만 받고 정부가 농민들에게 들어주는 기초보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보험 가입대상 품목에 해당하지 않는 농작물을 지원하기 위해 비보험작물 재해지원 제도(NAP)를 도입해서 운영하는데 연평균 10조 원가량의 국고를 쓰고 있다고 알려졌다. 주요 선진국들의 기후위기 농작물 보험 운영에 대해서는 좀 더 탄탄한 조사를 해볼 계획이다.

분명한 것은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분들이 해주셔야할 일이 바로 이거라는 점이다. 기후위기 시대 농작물 재해보험, 어떻게 실효성을 높일 것인가?

26일 오전 광화문 충무공 동상 앞에서는 60세 이상 노년 기후활동가들이 모인 '시니어 기후진정'이라는 단체가 이번 총선과 관련해 유권자들과 후보들을 향한 기자회견을 했다. 미래세대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꼰대가 아닌 조력자로서 거리에 나섰다는 이들은 이 날 이렇게 말했다.

"기후문제는 전적으로 정치의 문제입니다. 기후 재앙에 대응하지 않는 정치는 정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번 총선이 기후 위기를 중심으로 주권자들이 각성하고 행동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호소하고자 합니다."

[참고자료]
- 나남길, '위성곤 의원, "농작물 재해보험의 막대한 자기부담금, 손해액 절반은 농가 몫" (한국농촌경제신문, 2023.10.26)
- 유건연, '"농작물재해보험, 보장 범위 제한·조사방식 문제 많아"…과수농, 불리한 조건 가입 꺼려 (농민신문, 2023.12.4)
- 한우준, [신년특집] 사과 쓸어간 냉해·우박·호우 `3중고' … 재해보험금은 '새발의 피' (한국농정신문, 2024.1.1)
- 조성진, '농협손보 농작물보험 23주년, 가입률은 '절반' (스트레이트뉴스, 2024.2.8)
- 유천 목포대 무역학과 교수 인터뷰 '[출발 서해안 시대] "이상기후 일상화…농작물재해보험 개선 필요" (KBS목포, 2023.8.21)
덧붙이는 글 * 이 내용은 2024년 3월26일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에서 방송된 내용을 요약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 방송으로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을 통해서도 시청,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농작물재해보험 #우박맞은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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