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의 100배를 뛰어오르는 벼룩벼룩의 뜀뛰기 특기는 레살린이라는 특수 단배길을 가진 긴 다리가 있어 가능하다. Pixaby가 제공하는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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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속담 속의 벼룩은 뜀뛰기가 아니라 작은 몸집이 부각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몹시 적거나 작은 것을 빗댈 때 '벼룩 오줌만 하다', 또는 '벼룩의 뜸자리만도 못하다'는 말을 한다. 벼룩의 오줌이나 벼룩의 뜸 뜬 자리가 오죽하겠는가? 그야말로 '새발의 피'보다도 못할 것이다.
또 '벼룩 꿇어 앉을 땅도 없다'는 속담도 있다. 발 들여 놓을 틈도 없이 사람이 꽉 들어찬 상황을 말하거나, 농사지어 먹을 땅이 조금도 없음을 빗대어 말할 때 쓴다. 벼룩은 이처럼 몸집이 작아 뜀뛰기의 탁월함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결국은 '뛰어봐야 벼룩'인 것이다.
벼룩은 미미한 미물이다. '뛰어봐야 벼룩'이란 말에도 벼룩을 하찮게 여기는 인식이 놓여 있다. '벼룩이 황소 뿔 꺾겠다는 소리 한다'는 말에도 같은 인식이 들어있다. 벼룩이 황소 뿔을 꺾을 수 있겠는가? 능력이 보잘것없는 주제에 터무니없이 큰소리를 치는 경우를 빗대어 이른 말이다.
벼룩의 이같은 인식으로 인해 그것을 사회적 위상이나 경제적 처지가 낮은 존재에 빗대기도 한다. 잘 알려진 속담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이 속담을 매우 어렵거나 약한 사람에게 경제적 피해나 부담을 주었을 때 그 인색함과 야박함을 비난하며 쓴다.
구전동요에도 벼룩을 약자에 빗댄 노래가 있다. '그 벼룩 어디 갔나'가 그것인데 형식도 독특하고 내용도 재미있다. 가사의 형식은 이른바 '말머리잇기'라는 것인데, 앞 문장의 첫 단어를 끌어다 다음 문장을 시작하는 방식이다. 이제 노래를 만나보자.
앗 차차차
벼룩이 뛰었다
그 벼룩 어디 갔냐
걸레 속으로 들어갔다
그 걸레 어디 갔느냐
뒷집개가 물어갔다
그 개는 어디 갔느냐
순사가 잡어갔다
그 순사는 어디 갔느냐
서장이 불러갔다
- 김형주, <민초들의 옛노래-부안지방 구전민요>, 2004, 전북 부안.
벼룩이 쫓기는 상황이 되자 걸레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그러자 개가 그것을 안듯 걸레를 물어갔다. 이후 개는 순사에게 잡혀가고 순사는 서장에게 불려갔다. 이렇게 벼룩은 개, 순사, 서장의 지배로 넘어갔다. 노래는 약육강식의 연쇄적 지배구조를 보여주며, 최하위 약자를 벼룩으로 비유했다.
순사는 일제강점기에 경찰의 가장 낮은 계급이며, 해방 이후에는 그 직급을 순경이라 했다. 그렇다면, 노래의 순사, 서장은 당시 식민지 백성을 지배하는 일제 권력을 의미하며, 개는 그런 권력에 복무하는 일제의 앞잡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