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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런 말은 쓰지 맙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이 말하는 일하는 사람과 기후위기

등록 2024.05.02 13:53수정 2024.05.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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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연일 폭염이 이어지다 북상중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 부근 풍경. ⓒ 권우성

 
"집배노동자들이 일하는 우정사업본부에는 노동의 가치를 기리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있대요.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는 달라져야 합니다. 눈 많이오고 비 많이 오면 작업을 멈추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 지켜야 해요."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의 말이다. 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오늘의 기후>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기후위기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으며 적절한 대안은 무엇인지 모색해보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 실장은 우선 정부 통계나 기상청 예보에서 잡히는 기후위기 수치와 실제 작업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위험도 사이에 엄청난 간극을 짚었다. 지난해 건설노조가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당시 31개 사업장에서 측정한 건설 현장 체감온도는 기창청에서 제시하는 온도와 평균 6.2도 가량 높았다는 것이다.

건설, 배달, 음식조리 등 다양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목숨줄이 달린 위협으로 느끼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작업 중단 및 손실 보전 등 제도개선책이 진작 마련되어 있지만, 폭염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러지는 등 매년 비슷한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인터뷰 전문을 기록한다.

기상청 폭염온도보다 6.2도 높은 건설현장...  55% "실신하는 동료 본 적 있다"

- 올해도 벌써부터 더위가 심상치 않다. 지구 열대화... 이럴 때 가장 걱정되는 게 바깥에서 장시간 일하는 분들인데 기후위기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들 피해 상황은?

"일단 정부 공식 통계로는 '온열 질환'이라고 부르는데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온열질환 산재가 152명이고 사망은 52명, 2023년에는 8월까지 산재가 11건, 사망자가 2명이라고 발표한다.


그러나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이렇게 정부 통계인 '온열질환'만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면 통신 케이블 설치 노동자가 폭염 시기에 지붕 위에서 작업을 하다 땀에 젖어 미끄러져서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걸 단순 추락 사고로 볼 수 있는지. 폭염 시기에 배달 노동자가 땀이 흘러 시야가 흐려져 교통 신호를 제대로 못 보고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면 이건 과연 폭염과 상관없는 것인지. 그래서 지금 폭염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산재 통계라고 하는 정부 통계는 현장의 실질적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 현장에서 느끼는 폭염의 온도차이가 존재한다고 들었다.

"민주노총 소속인 건설노조가 작년에 31개 현장에서 현장 체감 온도를 조사한 바 있다. 기상청 발표 조사와 실제 현장 온도 사이에 평균 6.2도 가량 차이가 났다. 기상청이 29도라고 발표하면 건설 현장에서는 35.2도 정도로 체감된다. 왜냐하면 폭염이 발생하면 건설 현장은 철근 콘크리트 작업을 많이 하기에 상당히 온도가 올라간다. 콘크리트 양생작업을 할 때 열도 발생하기 때문에 기상청 온도와 체감온도 차이가 굉장히 크고 충청도의 한 현장은 22도까지 차이나는 사례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폭염시기에 건설 현장에서 본인이나 동료가 실신하는 것을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약 55%가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폭염 시기에는 거의 매일 보고 있다는 응답도 10%에 달했다.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 피해가 심각하다."

- 충격적이다. 이런 현실 속에 사업장은 제대로 대처를 하고 있다고 보는가?

"사실 폭염 예방 조치라고 하는 게 크게 보면 폭염 시기에 작업을 중단하고 휴식하게 하는 게 하나 있고, 다른 하나는 마실 물이나 휴게시설 등을 준비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폭염 속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위험이 심각하다. 하청 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같은 경우 완전히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건설노조에서 지난해 토목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일용 노동자 3200명 대상 조사를 벌인 적이 있는데, 폭염 시기에도 작업 중단 없이 계속 일하고 있다 81.7%였다. 2022년에는 58%였는데 오히려 폭염이 더 심각해진 2023년에 작업 중지 조치는 훨씬 더 안 되고 있는 현실이다."

- 폭염 특보가 발령되면 1시간 노동에 10-15분 휴식 아닌가?

"지난해 81.7%가 작업 중단 없이 일하고 있는 현실이었고, 폭염 특보가 발령되면 1시간 일하고 10분에서 15분 쉬도록 하는 권고조치를 지키는 현장은 25%밖에 안 됐다. 폭염이 심각해서 작업 중단을 노동자들이 요구할 경우 사업주들이 작업 중단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48.7%밖에 안 된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 그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정말 '거의 죽겠다' '이제 살려달라' 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아침 조회 때 말로만 쉬엄쉬엄 일하라고 하고, 그래도 '너무 더워서 어지럽다'라고 하면 '그러면 내일 나오지 말라'고 한다. 바로 짤리는 거다. 이런 게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였다. 휴게실 등 휴식시설도 25% 가량은 아예 없고 폭염 시기에 최소한 마실 물은 줘야 되는데 이런 물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20%가 넘었다."

폭염에도 못 쉬는 배달 노동자들, 기름 솥 옆에서 튀김 부치는 조리 노동자들

(폭염 피해는) 건설 분야 뿐 아니다. 전기나 가스 검침, 택배, 퀵 서비스 배달 노동자들은 모두 자신에게 정해진 물량을 채우기 위해서 폭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다. 외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뿐 아니다. 실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특히 조리사 노동자들 같은 경우에 열기구를 사용한다. 폭염시기 고열 작업으로 해서 실신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 지난해 폭염 당시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일하던 청년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코스트코 하남점에서 20대 노동자가 주차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망한 사고로 기억한다. 당시 기온이 33도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폭염 대책이 거의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해서 유족들이 산재 신청을 했고 산재가 승인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회사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휴게실같은 기본 시설도 안되어있다. 노동조합이 지금 파업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폭염으로 사람이 죽어도 파업을 해야 되는 게 지금 우리들 일터의 현실이다."

- 왜 이런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지 않을까?

"제도개선 대안은 진작부터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폭염 당시 제도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다 폭염이 끝나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그러다 다음해 폭염이 오면 또 반복되고 폭염 끝나면 또 관심 갖지 않고 실질적으로 개선은 안 되고 이런게 반복되는 게 가장 심각하다."

- 어떤 제도적 개선책이 있을까?

"폭염이 왔을 때 작업이 중단돼야 된다. 그런데 이게 지금 권고 수준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작업 중단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폭염 시 폭염 기준을 명확히 해서 외부 작업이든 실내 작업이든 사업주가 작업 중지를 하도록 하고 작업 중지 안 하면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실질적인 대책이 보장된다.

특히 건설 분야 같은 경우 대부분 하청 노동자들이다. 작업 중지가 실제로 되려면 원청이 이런 작업 중지에 대해 하청 노동자나 하청업체의 손실을 보장하도록 입법이 되어야 된다.

휴게시간이나 휴게시설 같은 경우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동 노동자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이런 경우 법에 적정 휴게시간이나 휴게시설이 보장되도록 명시되어야 한다. 특히 조리 노동자 같은 경우 폭염 시에 튀김이나 부침 등 열기구 사용에 대해 학교에서 메뉴를 바꾸는 등 실질적인 최소한의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검침이나 배달 노동자의 경우 폭염 시기에 배정된 물량을 좀 줄이면 되는데 그 물량을 줄이면서도 임금 손실이 없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 더우니 어쩔 수 없다가 아니라 분명히 대책이 있고 법제화를 하면 바꿀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한다. 22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폭염만 있는 것은 아닐 듯, 또 다른 기후위기 피해 유형은?

"폭염만큼 심각한 게 태풍이나 폭우, 폭설 같은 재해에 대한 노동자들의 피해다. 태풍으로 타워크레인이 넘어가거나, 폭우 시기에 작업하다 감전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폭설 같은 경우 사업장 지붕이나 축사가 무너져서 사망사건이 발생하는 등 굉장히 다양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심각하게 봐야할 부분이 있다. 지난 2022년 태풍 힌남노가 왔을 때 일이다. 그 정도 심각한 태풍이 오고 있는데 경남 창원 지역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는 요금 수납하는 노동자들이 그대로 일했다. 태풍이 발생해서 교통 통제 되고 도로 위에 차는 없는데 사업소에서는 요금 수납 노동자들더러 톨게이트 나가서 요금 수납 업무를 하라고 작업 지시를 내린거다. 이런게 지금 태풍 시기에 노동자들의 작업에 대한 사업장의 태도인 것같다."

- 마치 양동이로 들이붓듯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배달하시는 분들도 문제다.

"폭우가 쏟아져도 우편물을 배달하는 노동자들이 우편물 배달하려고 가다가 도로 위 배수관에 빠져서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 산불이 상당히 자주 발생하는데 산불 감시원이나 소방공무원 노동자들이 지금 완전히 위험에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22년에도 폭우가 쏟아지니까 가로수 정비 작업을 해야 되는데 가로수 정비 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 감전 장비 없이 작업을 시켜서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채상병 사건은 정치 이슈가 아니라 기후재난의 현실이다

폭설과 폭우 등 자연재난 현장에서 여러 가지 복구 작업들이 진행되는데 그 복구 작업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방치되고 있다. 최근 채수근 상병의 애통한 죽음이 있었다. 사실 그것도 태풍으로 인해 재난 구조 작업에 투입됐다가 발생을 했다.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상황에서 계속 일을 해야 되는 노동자나 복구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 사고, 이런 것에 대해서도 사실 거의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게 심각하다.

- 끝으로 시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은?

"얼마 전에 저희가 관련 증언대회가 있었는데 집배 노동자들께 들은 말을 소개한다. 우정사업본부에는 집배 노동자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사회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눈이 오면 비가 오면 작업을 멈추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가 돼야 한다.

(시민들께서도) 폭우가 쏟아지면 배달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 배달 주문 받지 마라고 요구하는게 우리희들의 일터나 사회 안전을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모습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 방송으로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2시간 30분 분량으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을 통해서도 시청,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 #노동절 #폭염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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