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황제 영결식 열렸던 '월명공원'의 어제와 오늘

사진과 기록으로 보는 군산 '해망굴' 이야기(1)

등록 2024.05.03 14:26수정 2024.05.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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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군산(群山)은 일제 식민 지배를 어느 도시보다 처절하게 겪었다. 따라서 탄압과 저항, 수탈의 생채기도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해신동에 위치한 해망굴(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이다. 해망굴은 군산공원(현 월명공원)을 관통하는 반원형 터널로 1926년 개통됐으며 당시엔 해망수도(海望隧道), 해망터널 등으로 불리었다.

채만식 소설 <탁류>에도 등장하는 군산공원. 4·19혁명(1960)과 6·10민주항쟁(1987) 때는 수천의 시민과 학생들 집결 장소였다. 초등학생 원족(소풍) 장소로도 인기가 좋아 중장년층에게 아련한 추억이 깃든 문화·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과 옛날신문, 인터뷰 등을 통해 두 명소의 발자취와 주변 상황을 정리하였다. 그 내용을 2회로 나눠 싣는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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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군산공원(현 월명공원)과 해망수도(현 해망굴) 입구 모습 ⓒ 군산역사관

 
일제가 홍보용으로 발행한 우편엽서 사진이다. 벚꽃이 만개한 산자락은 군산공원이다. <군산일보사>에서 주최하는 '야앵대회(夜櫻大會)' 축하 선전탑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미뤄 4월경 모습으로 보인다. 조선인 대부분 '초근목피'로 연명했던 시절(20~30년대), 공원 일대에서는 벚꽃놀이, 단오절 추천대회(鞦韆大會), 편사대회(궁술대회) 등이 해마다 열렸다.


해망굴 입구 상단의 '해망수도(광복 후 '해망굴'로 바뀜)' 글씨가 시대를 반영한다. 공원을 향해 걸어가는 흰옷 차림의 상춘객들, 쪽 찐 머리의 아낙과 꼬까옷 차림의 여아, 양지바른 비탈에서 노는 아이들, 물지게 지고 낑낑대며 걸어가는 두 여성. 검은 조끼 차림의 리어카꾼 등. 서슬 퍼런 식민 치하임에도 눈에 익숙한 모습들이어서 그런지 정겹게 다가온다.

안국사(현 흥천사) 본당 지붕이 살짝 드러낸 것으로 미루어 1930년대 모습으로 보인다. 군산공원은 개항(1899)과 함께 일제가 조성했으며, 처음엔 월명산(101m) 끄트머리 산자락(대사산) 부근에 한하였다. 통감부 시절(1906) '각국공원(各國公園)'이라 했다가 1914년 '군산공원'으로 개칭된다. 이후 몇 차례 확장됐으며, 1967년 인근을 산림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월명공원'이라 부르기 시작, 오늘에 이른다.

수학여행 코스로 인기 좋았던 군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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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공원에서 금강을 조망한 모습(사진 왼편으로 ‘등나무군락’이 보인다) ⓒ 군산역사관

 
군산 지역은 3월경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후 공원으로 향하는 상춘객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벚꽃놀이는 4월 초~중순경 절정에 달했다. 공원에는 해망굴을 경계로 신사(神社)가 두 곳 있었다. 또한 개항 35주년기념탑 아래에 일본인들이 '동양 최대'라고 자랑하는 등나무 군락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평일에도 나들이객으로 붐볐다고 한다.

1926년에 발행된 <군산안내>는 "군산공원은 군산부 서쪽에 있으며 경치가 웅대하고 소나무 숲이 우거져 창연하며 벚꽃이 필 때 조망이 가장 좋다. 금강이 눈앞에 흐르고 있으며 전북의 섬들, 충남의 산야가 일시에 펼쳐져 4계절 놀기에 적당하다. 산(대사산) 허리에 '군산신사(群山神社)'가 있어 경내에는 장엄한 기운을 느낀다"라며 군산의 으뜸 명소로 소개하고 있다.

시민의 휴식처이자 산책코스로 주목받는 월명공원. 지금도 산정에 오르면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금강과 고군산군도, 충남 서천군 일대, '군산팔경' 중 5~6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경관이 수려한 월명공원은 예로부터 학생들 수학여행 코스로 인기 좋았다. 1922년 가을 서울 보성고보 학생들이 교사의 인솔로 다녀갔다는 신문 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공원 일대에서 개최된 다양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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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운동장으로 사용했던 신사광장(배경은 군산공원) ⓒ 약진군옥대관

 
일제강점기 군산공원 일대에서 열린 주요 행사는 벚꽃놀이(4월), 개항기념일(5월), 단오놀이(5~6월) 등이었다. 특히 '야앵대회(밤벚꽃놀이)'가 시작되면 공원은 불야성을 이뤘다. 전주통(영화동), 명치정(중앙로 1가), 영정(영동) 등 일본인 거리는 상가마다 '대매출'이 적힌 전기등을 환하게 밝혀 불꽃놀이 하는 것처럼 화려했다. 벚꽃 만개 시기는 상점을 경영하는 일본인들에게 대목이었던 것.  

'호남칠정(湖南七亭)' 중 하나인 진남정(鎭南亭)에서는 진남구락부가 주최하는 편사대회가 열렸다. 동호인끼리 겨루는 소규모 친선 대회를 비롯해 호남칠정 대회, 남녀 사수(射手)가 출전하는 전국 규모 대회도 개최됐다. 특히 주최 측은 풍악에 맞춰 '지~화~자!'를 병창할 기생들을 초청하였고, 사수로 참여하는 기생도 여럿 되었다.

단오를 전후해 남녀 추천대회(그네뛰기대회)와 각희대회(씨름대회)도 열렸다. 그네뛰기는 단옷날 부녀자들의 대표적인 전통 놀이로 조선 기생도 참여하였다. 춘흥(春興)에 취한 일본인까지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중에는 가까이 지내는 기생 응원하러 나온 한량도 끼어있었다. 씨름대회는 주로 신사광장(공중운동장)에서 열렸으며, 상품도 푸짐했다.

조선의 마지막 군주, 순종황제 봉결식 열려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는 비운의 군주(君主)로 알려진다. 순종은 창덕궁에서 연금이나 다름없는 삶을 유지하다가 1926년 4월 25일 승하하였다. 비보를 접한 백성들은 창덕궁 돈화문전에 몰려와 땅을 치며 통곡했다. 저잣거리 점포들은 모두 철시(撤市)하였고, 각지에서 봉결식(奉訣式·영결식)이 거행되었다.

군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인 학교는 물론 교회에서도 수백 명의 신도가 모여 '북향 사배'하고 망곡(望哭)하였다. 6·10만세 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도시 곳곳에서 추도식이 거행됐던 것. 아래는 군산의 상점들이 모두 영업을 중단하고, 부청 직원과 시민들이 공원에 모여 '방성통곡'했음을 알리는 1926년 6월 12일 치 <동아일보>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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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황제 봉결식 기사(1926년 6월 12일 치 <동아일보>) ⓒ 동아일보

 
"(순종황제) 인산당일(因山當日)인 십일(十日)에 군산부 전시(群山府 全市)를 철시(撤市)하고 오전 중(午前 中)에는 군산부 관민 일동(群山府 官民 一同)이 군산공원(群山公園)에 회집(會集)하야 엄숙(嚴肅)한 중(中)에 봉결식(奉訣式)을 봉행(奉行)하였는바 그중(中)에 백의부녀(白衣婦女:흰옷 차림의 부녀자)들의 방성통곡(放聲痛哭)하는 데에, 일반 군중(一般群衆)은 감격(感激)의 눈물을 머금고 더욱 슬어하엿다더라.-(群山)"

백성들은 공원, 학교, 회관, 직장 등 장소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비통해하였다. 군산보통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봉도식(奉悼式·추도식)을 거행했으며, 개복동에 위치한 노동공제회 회관에서도 영결식이 열렸다. 입구에는 추모 깃발(만장·만사) 수십 개가 세워져 있었으며 조문객들은 제단에 정화수 떠 놓고 향불을 피운 후 북쪽을 향해 사배를 올렸다. 그들의 목맨 곡성(哭聲)은 울부짖음으로 회오리쳐 하늘과 땅을 울렸다.

지역의 근·현대 발자취가 오롯이 느껴지는 월명공원, 이곳에는 개항 60주년을 기념해 설치한 전망대를 비롯해 수시탑(守市塔), 애국지사 이인식 선생 동상, 의용불멸비, 충혼불멸비, 군산·장항·이리지구전적비, 삼일운동 기념비, 채만식 문학비 등이 세워져 있다. 지난 4월(19~20일)에는 '해망굴음악영화제'가 열리기도 하였다. 어제와 오늘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공원 일대가 향토사를 접목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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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공원 입구에 설치된 노천극장(2024 군산 해망굴음악영화제) 모습 ⓒ 조종안

 
참고자료
<군산시사>(2000), <군산 해어화 100년>(2018), 옛날 신문, 하반영 화백, 장금도 명인 생전 인터뷰
 
#월명공원 #군산공원 #해망굴 #문화예술공간 #음악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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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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