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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엄마의 한마디 "아이를 너무 방치하는 것 아니에요?"

[50대 아빠 두 꼬맹이 양육기⑦] 요즘 젊은 부모들과 다른 양육방식

등록 2024.05.03 17:15수정 2024.05.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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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 기억 한 토막. 과자를 먹던 중 한 아이가 땅에 떨어뜨렸다. 그 아이가 난처한 얼굴로 과자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자 다른 아이 한 명이 이야기한다. "괜찮다. 먹어도 안 죽는다." 그럴 때 대부분 땅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서 '후후' 불어서 먹었다.


다소 힘든 상황은 막대 아이스크림이 땅에 떨어졌을 때 겉엔 이미 흙과 먼지가 묻은 상태다. 이때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고 빨아서 흙과 먼지가 묻은 부분을 땅에 뱉고 나머지를 먹었다. 70-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내겐 아주 흔한 풍경이다.

물론 지금은 어디서도 그런 풍경은 볼 수가 없고, 그 시절 일화를 꺼내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다들 지을 것 같다.

그 시절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 시절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시절엔 그랬고, 그 시절을 살았기 때문에 내 가치관엔 그 시절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을 거라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 시절 옳았던 것도 있고, 틀렸던 것도 있고, 여전히 가치있는 것도 있고, 버려야 할 것도 있다. 그 두 가지를 정확히 가늠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다.

얼마 전 딸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담임이었다. 딸이 놀다가 다쳤다면서 나중에 보게 되면 너무 놀랄까봐 전화했다고 했다. "괜찮아요. 놀다가 다칠 수도 있죠"라고 답했다. 담임은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너무 고맙죠"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자라던 시절 우리 부모들은 대체로 그렇게 행동했고, 그런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우리는 자랐다. 그래선지 우리 아이들은 잘 다친다. 지난 주말 폐교에서 놀다 아들은 바위에 눈가를 부딪쳐 상처가 났고, 딸은 넘어져 아래턱이 긁혔다. 애들은 '헤' 웃지만 보고 있자니 속상하고, 너무 발랄하게 키우는 건가 자문하게 된다.


놀이터에서 놀 때 아이들은 잘 넘어진다. 잘 울기도 한다. 병원에 갈 만큼 다치는 일은 거의 없다. 꽤 오랫동안 가방에 마데카솔과 밴드를 갖고 다녔다. 넘어지거나 다치면 현장에서 상태를 보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다른 아이들도 다치면 그렇게 조치했다.

연고를 바르거나 밴드를 붙일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넘어지거나 울더라도 상태가 미미하면 "놀 수 있겠어?" 물어보고 끄덕이면 다시 놀게 했다. 몇 년 동안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면서 "놀 수 있겠어?"라고 물었을 때 "놀 수 없겠어"라고 대답한 경우는 한 번인가, 두 번 정도밖엔 없다.

아이가 넘어져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아이가 울더라도 크게 달래주지 않는다. 아들이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쳐 자주 보던 학부모가 있었다. 아들 친구네 엄마가 나를 보고 "너무 방치하시는 것 아니에요?"라며 웃었다.

누구나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상대를 본다. 상대방 위치는 내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그 엄마는 아이들을 아끼고 잘 놀아주는 훌륭한 엄마다. 매일 신선한 반찬을 만들어 아이들 식사를 차린다. 매일 1시간 이상씩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논다. 그 엄마는 아이들을 보면서 항상 웃는다. 그 분에게 '방치'라는 말을 들었으니 쉽게 넘길 말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양육원칙 가운데 하나가 '최소 관여'다. 물론 사람마다 다 기준이 다를 테지만, '방치'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니 '최소 관여'라는 원칙은 지켜지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 '방치'라는 말을 들은 뒤에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내 모습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고쳐야 할지, 고친다면 뭘 고쳐야 할지 딱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긴, 쉽게 바뀌면 그게 사람일까. 아무튼 아빠가 그러하니 아들과 딸은 그 누구보다 '터프'하게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내 또래들은 대략 20여년 전에 유치원생들을 키웠는데, 난 이제야 키우고 있으니 간극이 꽤 크다. 타임머신 타고 20여년 뒤 세상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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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거나 울더라도 상태가 미미하면 “놀 수 있겠어?” 물어보고 끄덕이면 다시 놀게 했다. ⓒ 김대홍


매년 초 유치원에서 설문조사를 한다. 학부모 행사 참여여부를 묻는다. 이것도 참 생소하다. 내 자랄 때를 생각하면 우리 시대 부모들은 학교 입학하면 관심 끝이었다. '믿고 맡긴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사실은 '알아서 하겠지'였다. 생활에 여유가 없으니 아이들 학교생활에 큰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고, 학교는 '교사 뜻대로'가 당시 암묵적 룰이었다.

그 때문에 학부모나 학생 목소리가 적었으니 지금은 그 시절보다 참 많이 나아졌다. 한편에서는 '교사 권위가 사라졌다'며 힘겨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있으니 세상이 좋은 쪽으로만 나아지는 건 아니구나 싶다.

과거 가치관을 갖고 요즘 젊은 학부모들 사이에 있다 보니 깜짝 놀랄 헤프닝도 겪는다. 아들 학예회 때 일이다. '유치원 잘 다니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내는데 담임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 학예회 때 오느냐고. 혼자만 신청하지 않았다고. 혼자만 신청하지 않았다는 말에 '허걱'하며 가겠다 했다.

문제는 학예회 때 일어났다. 학예회가 열리는 동안은 몰랐다. 몇 백명이 들어가는 큰 강당에서 열렸고, 아이들 공연은 꽤 훌륭했다. 요즘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교육 수준이, 흡수하는 아이들 수준이 저렇게 높아졌구나 싶어서 입이 '쩍' 벌어졌다. 어두컴컴한 강당에 불이 켜지고 모든 학부모가 밖에 나오자 화려한 꽃다발 더미를 보게 됐다.

사탕, 초콜릿, 편지, 인형 등으로 잘 꾸며진 수제 꽃다발들이었다. 공연을 잘 마친 아들이 '아빠' 하고 불렀다. 아빠 손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엄마 헤어스타일 바뀌는 것을, 엄마 옷이 바뀌는 것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눈치 빠른 아들이 아빠 손이 '휑'한데도 별로 괘념치 않는 듯 보였다. 아빠는 민망해했지만 아들은 '싱글벙글'이었다.

그 일이 있고 대략 반년이 지났다. 딸 어린이집 졸업식이 다가왔다. 그 때 일이 또렷이 기억났다. 이번엔 꽃다발을 준비해야지 마음먹었다. 수제 꽃다발은 무리고, 꽃집 꽃다발을 생각했다. 졸업식은 10시. 당일 9시까지 꽃다발을 사서 출발하면 시간이 맞았다. 문제는 9시까지 문을 연 꽃집이 드물고, 9시에 문을 연다는 곳들도 방문하니 닫혀 있었다. 몇 군데 허탕을 치고 겨우 꽃을 샀다. 겨우 5분 전에 도착했다.

졸업식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졸업식이 참 재미있었다. 동영상 편지와 애니메이션, 합창 등 프로그램이 아기자기했다. 수준이 참 높아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했을까 싶었다. 식이 다 끝나고 사진을 찍는 시간. 딸 꽃다발을 준비한 건 오로지 나 혼자였다. 딸은 꽃다발은 아랑곳없이 '친구야'를 부르며 '방방' 뛰어다녔다.

다들 꽃다발을 준비할 땐 나 혼자 준비하지 않고, 아무도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을 땐 나 혼자 준비했다. 꽃다발을 준비할 때와 준비하지 않을 때 규칙이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난 요즘 젊은 학부모들이 다 아는 암묵의 규칙을 모르는 것 같다.
#양육 #양육방식 #최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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