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최고위급 군지휘관을 양성하는 김정일군정대학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2024.4.11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주장을 접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북한 주민들은 그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적대적 두 국가관계'는 단순히 북한의 대남, 통일정책을 수정하는 수준을 넘어 북한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재정의하는 수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혁명의 중요한 부분이 소위 '미제국주의'에 의해 '착취' 당하고 있는 '남조선'을 '해방' 시킨다는 민족해방론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북한은, 북한의 이데올로그들은, 무엇보다도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필자는 북한 사회가 '최소한' 현재의 시점에서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김정은의 두 차례 연설 이후 북한의 방송이나, 신문, 문헌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설 자료를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후속 조치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김정은의 발언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에서 지도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왕(王)'이라 해도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는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이 북한이라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뇌수'로 우상화되던 때조차도 통치이데올로기와 그 하위 담론들은 체계적인 이론화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전달됐다. 어떤 사회건 최소한의 사회 동의구조가 존재하며 북한 또한 강력한 사회통제체제 속에 체계화된 동의구조를 운용해 왔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은 이전의 프로세스와 다른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북한이 담론화했던 '우리민족제일주의'나 '우리 민족끼리', '김일성애국주의', '우리국가제일주의', 그리고 최근에 강조되고 있는 '인민대중제일주의'가 북한의 전문가, 소위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체계화되고 선전되며, 선동의 구호로 진화하는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김정은은 '선대 수령의 유훈'을 부정할 수 있나?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선대 수령들의 유훈'을 넘어서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여전히 '선대 수령들의 유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김정은은 선대 수령들을 넘어서기 위해 유훈을 앞세우면서도 자신만의 정치를 추구해 왔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통일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일성은 김정은이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한 통일의 원칙(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 담긴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탄생시켰으며, 김정일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에 스스로 사인했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 평화적 통일에 대한 남북의 합의를 부정하는 것은 선대 수령들의 성과, 즉 '유훈'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선대 수령들의 유훈'을 단지 남한의 대북, 통일정책을 이유로 부정하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를 김정은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는 얼마 전 일본에서 만난 연구자로부터 조총련계 연구자들이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연설로 혼란스러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북한의 지배층에서도 이와 관련한 혼란이 존재할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어쩌면 김정은은 북한의 통치엘리트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성급한 판단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아야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강고했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동맹은 중국과 러시아의 이탈로 그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도 난망하다. 엄중한 한반도 주변 정세 속에 우리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분명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남북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통일전략을 전면적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관련하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를 해체하고 북남경제협력법과 금강산관광특구법을 폐지하는 등 몇몇 가시적인 조치를 취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북한 사회에서 이 문제가 정치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이기엔 아직 이르다. 이 담론은 여전히 '미생(未生)'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실기해선 안 된다.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설명하면서 그 주어로 '북한'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북한은 더 이상 지도자의 이름만으로 단일하게 호명될 수 없다. 반대로 '북한'이란 단어로 북한 사회 전체를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 냉정한 판단으로 무겁게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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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평양학개론], [한반도 스케치北], [속삭이다, 평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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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두 국가론', 성급한 판단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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