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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 대자보 쓴 청년들 "영수회담? 비서실장 교체? 무능 정부 여전"

[인터뷰] '2030 유권자 네트워크' 소속 5명 "일방적·강압적 정부, 민심이 심판"

등록 2024.05.07 18:10수정 2024.05.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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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 유정씨(고 유연주씨 언니)가 지난 3월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조성된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2030 세대에게 총선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대자보를 작성했다. ⓒ 권우성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건, 전세사기,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총선 전 투표 독려 대자보를 붙였던 청년들이 이번 총선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목한 사안들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전세사기 피해자 등 청년들은 자신들이 겪은 문제가 이번 총선에서 판세를 좌우하는 주요 이슈였다면서 "대통령이 사회통합을 위한 정치적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총선 이후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 등 정부와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이 다 끝났다는 식으로 말했고,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반감을 사게 됐다." - 참사 희생자 고 유연주씨 언니 유정씨

"채 상병 사망 사건처럼 국민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사안들이 총선 결과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 해병대 예비역 신승환씨

"지난해부터 정부와 여당에 면담을 수백 번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전세사기 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 - 전세사기 피해자 이철빈씨

"R&D 예산 복원과 관련해서는 비전문가인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가 아닌 과학계의 의견을 확실히 반영해야 한다." - 카이스트 재학생 채동주씨
 
<오마이뉴스>는 총선 전 전국 대학가에 '릴레이 대자보'를 부착한 청년 다섯 명을 3~4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학교와 직장을 다니면서도 '2030 유권자 네트워크'로 뭉쳐 청년들의 문제를 알리고 2030 세대의 투표 참여를 위한 활동을 병행해 왔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눈에 띄는 청년 이슈나 정책 공약이 없었고 자신들을 대변하는 젊은 정치인도 찾아보기 어려웠다"면서 최근 국회에서 처리된 이태원 특별법, 채 상병 특검법, 전세사기 특별법 등 쟁점 법안들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없이 하루빨리 통과되고 공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망... "청년과 동떨어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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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의 대자보 지난 3월 28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에 붙은 '내일을 위해 우리 함께 투표합시다'라는 제목의 익명의 대자보. ⓒ 오마이뉴스


대자보를 쓴 청년들은 야당이 압승한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정부와 여당의 불통을 민심이 심판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전세사기,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망,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 청년들이 피해를 겪거나 크게 공감하는 문제들을 정부와 여당이 외면하고 거부한 것이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빌라왕'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자인 이철빈씨는 "야당이 이번 총선에서 200석에 준하는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건 대통령과 여당을 심판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년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가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었다"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의결한 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하면서도 사회통합을 위해 아무런 정치적 대안을 내놓지 않는 모습에 청년들이 답답함을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대자보 발의자로 나섰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유연주씨 언니 유정씨도 이번 총선이 "정치를 향한 민심이 드러난 결과"라고 해석했다. 유씨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전후로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국정조사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음에도 정부와 여당은 진상규명이 다 끝났다는 식으로 말하며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고,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고 반감을 사게 됐다"고 말했다.

경북대에 재학 중인 해병대 예비역 신승환씨는 "채 상병 사망 사건처럼 국민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사안들이 총선 결과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통령실과 여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에 대해 "사령관의 명령을 사단장이 받을 수밖에 없는 수직적 지휘 체계에서는 책임의 소재가 분명한데 단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특검을 의도적으로 보류하고 거부하는 모양새"라며 "이번 총선을 계기로 해병대와 군대라는 조직 전반의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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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KAIST) 재학생 채동주씨(카이스트 학위수여식 R&D 예산 복원 요구 입틀막 강제퇴장에 대한 대학생·졸업생 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지난 3월 27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정문 앞에서 전국 이공계 학생들에게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대자보를 작성하고 있다. ⓒ 정성일


카이스트 물리학과 4학년 채동주씨는 "과학기술단지(대덕연구단지)가 있는 대전의 총선 결과를 보면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과학계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대전 유성을에서는 민주당 후보(황정아 당선인)가 6선에 도전하는 국민의힘 이상민 후보를 20%포인트 넘는 표차로 이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올해 삭감된 R&D 예산을 내년에 복원한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과학계를 언제든 다시 '카르텔'로 규정하고 예산을 삭감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며 "앞서 R&D 예산을 삭감한 이유를 우선 명확히 밝히고, 비전문가인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가 아닌 과학계의 의견을 확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약속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영수회담, 비서실장 교체에도 "변화 없다" "무능하다"

'심판론' 같은 구호가 난무할 뿐 청년 정치와 관련된 의제가 실종된 선거였다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앞서 이철빈씨와 유정씨의 대자보를 읽고 화답 대자보를 쓴 한국외대 휴학생 이민지씨는 "지난 선거들에 비하면 청년에 관한 이야기들이 쏙 들어갔다"며 "이번 총선에서는 청년 정치인도 딱히 보이지 않고 청년 고독사, 우울증, 취업난 같은 화두들도 정책이나 공약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가 청년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2030 유권자 네트워크'를 제안한 이철빈씨도 "예전엔 청년 정치인을 얼굴마담으로 세우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이번엔 20대 정치인이 거의 전멸하고 30대 정치인도 소수에 그쳤다"며 "정권 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압도하면서 청년의 관심사나 일상과 다소 멀게 느껴지는 의제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민주당과 비슷한 결을 보이는 조국혁신당 같은 정당에서도 청년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치 활동을 하기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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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유권자 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4월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대학생이 평가한다! 윤석열 정부 중간고사 점수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유성호

 
총선 이후 정부의 대처와 반응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신승환씨는 총선 이후 여야 첫 영수회담과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 등 정부의 국정기조 변화 시도에 대해 "실질적인 변화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변화하겠다는 제스처만 보여주려는 느낌이다 보니 무능하다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민지씨도 "영수회담에서 대통령 발언(비중)이 85%가 넘는다고 하고 국정 기조도 사실상 유지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게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에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철빈씨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전세사기 특별법을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를 꼬집었다. 이씨는 "대책위가 지난해부터 정부와 여당에 면담을 수백 번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법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특별법에 반대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며 "다가구 주택과 근린생활시설 등 사각지대 피해자를 위한 보완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는 지난해 5월 전세사기 특별법에 합의하면서 6개월 뒤 보완 입법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한편 유정씨는 '이태원 특별법'이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많이 늦었지만 그동안 함께해 준 시민들이 있었기에 여야 합의로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면서도 "이것이 의미 있는 법으로 남으려면 결국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최장 1년 3개월 동안 조사위원들이 성실하게 조사를 실시하고, 국민들이 그 과정을 엄격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여야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일부 수정해 합의 하에 통과시켰다. 하지만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앞두고 여당은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란 이유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퇴장했고, 특검법은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선 구제 후 회수' 방식으로 지원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본회의에 부의됐다.
#2030유권자네트워크 #총선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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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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