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오이책방지기
화성시민신문
오늘도 책방에 사람이 없다. 나는 사실, 이런 공간과 시간을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책방 카페에 앉아서 좋아하는 책들에 둘러싸여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엄청난 행복이자 행운 아닌가!
책방지기의 기쁨을 세어보면 실로 대단하다.
1.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주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책방지기는 정말 부자다.
2. 좋아하는 책이 도착하면 박스를 풀어 책을 맞이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3.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추천할 수 있다. 특히, 도서관에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마구 넣을 때 그 도서관이 책방지기와 아무 상관이 없을지라도 책방지기는 기쁨에 넘친다.
4. 책에 대한 공감을 나눌 사람들이 자주 온다.
5. 추천을 받고 책을 구매한 사람이 그 책이 정말 좋았다고 말할 때 너무 행복하다.
6. 때로는 이번에는 무슨 책을 읽는 게 좋겠는지, 책방지기를 무한신뢰하며 물어보는 단골손님이 있다.
7. 손님이 없는 날에도 책방에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책방을 하는 기쁨은 백가지도 넘지, 하고 생각했던 나는 여기까지 쓰고 말문이 막힌다. 더 이상 없었던가!
오이책방은 올해로 3년차. 6월이 되면 만 3년을 맞는다. 주변에 새로운 서점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또 문을 닫기도 하는 상황에서 오이책방 같은 곳이 서점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조금 많이 부끄러운 일이다. 고백하자면 오이책방은 그물코 카페에 얹혀살면서 생계 걱정을 그다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을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그물코카페가 상시적인 경영 어려움에 처해 있어 오이책방의 매출이 그물코카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아!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오이책방이나 그물코카페가 다 같이 힘들어졌다. 오이책방은 경기도지역서점 인증은 받았지만 화성시지역서점 인증을 받지 못했고 화성시 지역서점에서 책을 대부분 구매해야 하는 작은 도서관들은 더 이상 오이책방에 책 납품을 부탁하지 않는다. 오이책방에서 도서관에 추천도서를 넣는 기쁨도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에서 도서관, 서점, 출판계의 지원 사업들이 줄줄이 사라지고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것도 영향이 크다. 하지만 서점 지원 사업이라고 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형식적인 지원이 많았다. 지역서점을 지원하긴 하는데 작가 초대를 하거나 행사에 필요한 물품 구매를 하는 데에는 허용적이나 서점의 공간 이용료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심지어 해당 서점에서 사업비로 책 구매가 가능하나 공급율 그대로 구매하게 되어 있다. 공급율이란 서점이 도매업체에게 들여올 때 내는 책 정가의 비율이다. 정가 1만원짜리 책을 70%의 공급율로 받는다면 7000원을 도매업체에 주고 가져오는 것이다. (지역서점은 대개 도매업체에서 정가의 65~75% 비율의 가격으로 도서를 구입한다.)
지역서점이 월 임대료와 관리비에 허덕이므로 서점의 인건비는 거의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역서점 지원사업이라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장 강사비와 재료비, 홍보비들을 사업비로 지출해 사람들을 지역서점에 모으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것이 지속적으로 서점을 살리는 방법인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화성시지역서점인증제 역시 아쉬운 점이 많다. 지역의 작은 도서관과 연계해 지역서점을 살린다는 취지는 좋은데 지역서점 인증을 받으려면 매장의 50% 이상을 서점으로 운영해야 한다. 지역서점의 특성상 살아남기 위해 카페나 와인 바를 겸하는 매장은 공간의 50% 요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공간은 크지 않아도 지역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고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는 지역서점들이 많은데 단지 '공간의 50%'를 만족하지 못해 지역서점 인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책방을 한다는 것은 사치가 되어 버렸다. 얼만 전만 해도 향남의 소중한 공간이었던 다락이 문을 닫았고 동탄의 또 다른 서점이 문을 닫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동네에 책방이 하나 둘 생겼다가 또 하나 둘 없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동네에 책방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가로등이 켜지는 것처럼 든든하고 마음 따뜻한 일 아닌가. 오이책방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책들이 반갑게 자신의 손님과 만나기를, 아니 그보다는 골목길 한 구석에 있는 책방의 작디작은 공간이 누군가에게 쉼표 하나, 띄어쓰기 하나가 되기를, 이 작은 책방에서 가끔 열리는 낭독회나 음악회, 독서모임이 따듯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그런 엄청난 사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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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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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가로등과 같은 동네 책방인데... 책방지기를 근심케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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