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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주셔서 감사" 8일 열린 이 공연의 멋진 의미

밴드 소수윗 결성 1주년 기념 파티... 수익의 반은 장애인 일자리 투쟁기금으로 쓰여

등록 2024.05.09 09:51수정 2024.05.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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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어버이날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마을극장에서 밴드 "소수윗"의 1주년 기념 공연 <퀴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열렸다. 밴드 소수윗은 스스로를 '소수자와 함께 하는 투쟁펑크듀오'라 소개한다.

결성 뒤 1주년이 될 때까지 팬들을 향해 '퀴어(키워)주셔서 감사하다'며 '가정의 달'에 열린 이 공연에 붙은, '마을' '극장' '퀴어'와 같은 낱말들의 연결이 퍽 의미심장하게, 혹은 불온하게 여겨진다.


이 날 공연에는 소수윗을 비롯해 동녘, 이민휘, 야마가타 트윅스터 총 4팀이 참여했는데, 이들 모두는 장애인 야학인 '노들야학'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소수윗의 멤버 '호수'는 장애인 노동권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이 날 공연의 수익의 50%는 장애인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투쟁 기금으로 기부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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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의 공연 <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대에서 뮤지션 동녘이 노래하고 있다. ⓒ 상현

 
첫 무대는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서정적인 목소리를 들려준 동녘이 열었다. 무대 한 켠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 화면이 띄워졌고, 무대 맨 앞 줄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객이 자리잡았다. 총 60석의 아담한 계단식 극장 객석을 채운 관람객들이 포근한 어둠 속에서 노랫말에 귀기울였다.

두번째 무대로 화려한 신디사이저&기타 연주와 허스키한 음색이 근사한 이민휘&사공의 공연이 이어지며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었다.

'쏘 스윗'과 '소수 weed' 사이

세번째 막이 오르자 '댄스 음악'이 시작됐다. 절로 목과 어깨를 들썩이고 노랫말을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주인공, 밴드 소수윗의 공연이다. 오락실 기계에서 나올 것만 같은 명랑한 전자음과 흥겨운 비트 위에 위트 있는 노랫말이 얹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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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윗의 무대 무대에 오른 밴드 '소수윗'. 객원가수로 소수윗 탈부착지부 부산지부 '캉뉴'가 함께했다. ⓒ 상현

 
소수윗의 대부분의 곡 가사에는 언어유희와 반전의 묘미가 있다. "So Sweet So sweet(소 스윗)/ 소수 Weed 소수 Weed(잡초)"(<소수윗>) 가사처럼, 단어에서 글자 하나만 바뀌면 말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듯이, 젠더나 소수자성도 마찬가지로 작은 차이에서 의미가 완전히 뒤집힌다는 뜻으로 읽힌다.


'비슷하지 뭐가 다르냐'라며 다양한 존재들을 구태여 동일한 범주에 집어넣으려는 언어 관습, 거기에 저항하려는 것 같기도 해 재미있다. 

 

밴드 소수윗 - 소수윗(DEMO) ⓒ 소수윗

   
이들의 음악, 특히 가사에서 특징적인 것은 불합리할 수 있는 차별을 가사를 통해 조리 있게 뒤집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 기세가 좋다. 
 
"우린 오래오래 살아갈거야/ 아직 죽기엔 시기상조니까/ 우린 오래오래 살아갈거야/ 죽기엔 합의가 부족하니까"(<시기상조>)

"성별을 초월한 사랑을 하고 싶어/ 너와 / 긍정의 이성애"(<긍정의 이성애>)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연대'의 마음

이들은 그 자신도 소수자의 입장에서 자신과 친구들을 차별하거나 억압하는 세상에서 겪는 외로움을 토로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차별을 행하는 이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사랑'과 '연대'의 마음을 힘주어 노래한다.
 
"누구도 우릴 사랑하지 않고/ 그저 두려워하거나 못본 체 한데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살아 숨쉬는 유령이 되어"(<유령>)

"포기하지 않고 그럼에도 우리 함께/ 길고 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오늘 마주한 당신의 슬픔을 내가 위로할 수 없다고 해도/ 그리고 모두가 연결된/ 그 곳에서 만나"(<삶의 궤도>)

공연에는 소수윗 탈부착 부산지부에서 활동하는 '캉뉴'가 무대에 함께 올랐다. 이들 지부의 자격을 얻으려면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한단다. 젠더, 성정체성, 성적 지향, 연령과 세대 등 모든 것이 달라도 되지만, 서로 차별하지 말고 다양성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은 동일해야 비로소 이들의 동료가 될 자격이 생긴다는 것.

당연하지만 이들의 공연은 매우 '정치적'이다. 작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 장애인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해 장애인을 해고자로 만든 것을 가사로 꼬집으며, '앙큼 상큼'한 비트가 흘러나오는 간주에서 투쟁 구호를 외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심지어 공연 중간에는 객석에 권리중심노동자 해복투(해고복직투쟁) '전단지'가 돈다.

신곡 <걸리적거리는 권리>의 노랫말은 매우 직설적으로 이러한 메세지를 드러내고 있다.
 
"당신의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권리/ 우린 이렇게 살아갈거야~ / 권리! 권리! 권리! 권리!"(<걸리적거리는 권리>)

짜파게티 면 익히는 행위예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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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짜파게티 면이 알맞게 익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노랫말이 문자통역으로 제공되고 있다. ⓒ 상현

 
마지막 주자, 행위예술자이자 '민중 엔터테이너'로 불리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 무대에는 가스버너와 노란 양은 냄비가 등장했다. 그는 500ml 생수병에 담긴 물을 냄비에 붓고 가스불을 켠 후 공연을 시작했다. 가수가 노랫말로 주문한 것처럼, 보글보글 끓는 냄비 속에서 짜파게티 면이 알맞게 익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자니, 잘 모르는 타인의 사소한 성취를 힘껏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출근하면서 아침에 잊지 않고 카드지갑을 잘 챙겨나가거나, 그가 무탈하게 배변활동을 달성하는 것 따위 말이다. 다행히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짜파게티 면이 알맞게 익었다. 한편으로는 고작 라면 하나 끓이는 데에도 온 성의를 다해 응원해야하는, 이 '알맞음'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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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도 짜파게티 요리사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서 짜파게티를 나눠먹는 공연자와 관객들 ⓒ 상현

 
한껏 집중해 푹 빠져서 4팀의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왔더니 무척 허기가 졌다. 막을 내린 무대 위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끓인 짜파게티를 한 젓가락씩 나눠먹은 것 이외에는 저녁도 못 먹은 채였다. 야식으로 라면을 하나 끓였는데 면이 딱 알맞게 익었다. 공연의 기운을 받았나 싶다.

괜시리 충족된 기분에, 이제 1주년을 맞은 밴드 소수윗이 그랜드 월드 투어를 돌고 이 세상이 좀 더 소수자들에게 알맞은 곳이 될 때까지 연결과 사랑을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 성소수자 정치 활동가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중증장애인노동자 400명 해고에 맞선 해고복직 투쟁 후원계좌는 598601-04-193974 (국민, 사단법인 노란들판)
#소수윗 #퀴어 #성북마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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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활동가, 문화기획자, 정당인. 덜 파괴하며 조금 더 공존하는 생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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