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탄지의 정원 16세기 다이묘이자 작정가인 고보리 엔슈가 만들었다
정효정
한편 이 절에는 전국시대 여성 다이묘였다는 이이 나오토라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개국공신이 되는 이이 나오마사의 양어머니다. 전해지기는 이이 가문에 아들이 없어 나오토라는 데릴 사위를 조건으로 사촌과 약혼했다.
그러나 연이은 모반에 약혼자의 생사가 불분명해지자 그녀는 이 절로 출가했다. 11년 후 그 사촌이 살아 돌아왔지만 나오토라는 이미 출가한 후여서, 그는 다른 여성과 결혼해 아들 나오마사를 낳았다. 하지만 어린 아들을 남기고 곧 죽어버렸기에 출가했던 나오토라가 환속해 여성 다이묘가 되어 가문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양아들인 이이 나오마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발탁되어 에도 막부의 개국공신이 되고, 히코네 번 초대 번주가 된다. 이 이야기는 2017년 NHK 대하 드라마인 <여자 성주 나오토라>로 방영되기도 했다.
결국 인생은 감사함으로 이어져 있다
하마마쓰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스즈키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마마쓰에 가기 전날, 도쿄에서는 진도 4.8의 지진이 있었다. 옛날 가옥을 개조한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오래된 나무 건물이어서 그런지 건물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다행히 단발성 지진이었긴 했지만, 몹시 놀랐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건물이 단숨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보다 차라리 좌우로 흔들리는 편이 안전하다고 했다.
"인생 같은 거지. 버티고 있으면 오히려 무너지니까, 차라리 어느 정도 흔들리는 게 나은 거야."
무너지지 않기 위해 힘을 주고 버티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충격을 가져온다는 거였다. 주춧돌 위에 나무기둥을 세운 옛 가옥들이 오래 버티듯이, 인생에서도 적당히 흔들리는 것이 무너짐을 예방하는 비법이라고 했다.
"그래도 큰 지진이 오면 무너질 수 밖에 없잖아요?"
"그때는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지진에 대비해 머리맡에 신발이랑 호루라기를 두고 잠을 자라고 해. 진짜 큰 지진이 일어나면 깨진 유리나 건물 잔해 때문에 맨발로는 대피할 수 없거든. 그리고 호루라기는 도움을 청할 때 필요하고. 무너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정도의 일이니까, 그런 걸 대비해 두는 거지."
우리는 지난 3~4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인 재난도 있었고, 각자 개인적인 삶의 고난도 있었다. 재난은 사람들의 DNA를 훼손시킨다. 한번 붕괴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른 고난을 걱정하며, 개방성을 잃고 눈앞의 행복에만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나 미래에 대한 예측이 의미 없다고 가르친다. 모든 것은 어차피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인생이 무상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당연하다(当たり前)'의 반대말은 '감사하다(有り難う)'이듯이, 지금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지는 거야."

▲호코지의 불상 “'당연하다(?たり前)’의 반대말은 ‘감사하다(有り難う)’이듯이, 지금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지는 거야.”
정효정
일본어로 '감사합니다'는 '아리가토 고자이마스(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다. 보통은 히라가나로 쓰지만, 한자로 쓰면 있을 유(有)에, 어려울 난(難)을 써서 '아리가토우(有り難う)'가 된다. 직역하면 '있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일이다'라는 뜻이다.
이는 법구경의 '인간으로 태어나기란 어렵고, 수명을 받기도 어렵다. 삶에서 부처님을 만나기도 어렵고 진실한 법을 듣기도 어려운 일이다(得生人道難 生壽亦難得 世間有佛難 佛法難得聞)'라는 구절에서 왔다고 한다.
때문에 삶의 모든 순간을 경이롭게 대하는 자세가 바로 '감사하다(有り難う)'이고, 그 반대는 재미도 기쁨도 감동도 없는 '당연하다(当たり前)'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인생은 감사함으로 이어져 있다. 늘 변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기적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말이다.

▲'지금 (?今)' 이라는 글씨를 보여주는 스즈키 스님 지금 이 순간 '?今只今(そっこんただいま)'을 마음으로 적었다고 한다.
정효정
헤어질 때 스즈키 스님은 '지금 (即今)'이라고 적힌 그의 서예 작품을 건네줬다. 그날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주로 지진과 팬데믹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론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버티지 말고 그냥 흔들릴 것.
만약, 무너진다면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그리고 모든 순간에 감사할 것.
▶여행정보
- 호코지 일일 선체험 (日帰り禅体験 奥山方広寺)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일본의 사찰 체험 프로그램이다. 스님과 함께 하는 좌선과 정진 요리를 체험 해볼 수 있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이며, 2인 이상 신청할 수 있다. 인당 11,000엔. 사찰 배관료는 성인 500엔. 어린이 200엔.
【주소】 静岡県浜松市浜名区引佐町奥山1577-1
【전화 번호】 053-543-0003
【가는 법】 하마마쓰역에서 호코지까지 오쿠야마(奥山)행 45번 버스 탑승. 약 1시간 30분 소요.
【홈페이지】 https://www.houkouji.or.jp
- 료탄지 (龍潭寺)
전국 시대 여성 다이묘였던 이이 나오토라가 출가했던 절로, 막부의 개국공신 이이 나오마사와도 연고가 있다. 국가정원명승지로 지정된 고보리 엔슈의 정원을 관람할 수 있다. 배관료는 성인 500엔. 어린이 200엔.
【주소】 静岡県浜松市浜名区引佐町井伊谷1989
【전화 번호】 053-542-0480
【가는 법】 JR 하마마쓰역에서 료탄지까지 오쿠야마(奥山)행 45번 버스 탑승. 약 1시간 소요.
【홈페이지】 https://www.ryotanji.com/
- 하마마쓰 성 (浜松城)
157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성으로 그가 17년간 살았던 곳이다. 성 바로 앞에는 전투에서 패배한 그가 갑주를 걸었다는 소나무가 남아 있다. 이곳을 거쳐간 이는 출세를 한다고 해서 출세성이라 불리며, 취업이나 승진을 앞두고 좋은 기운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입장료 어른 200엔. 중학생 이하 무료.
【주소】 静岡県浜松市中区元城町100-2
【전화 번호】 053-453-3872
【가는 법】 JR 하마마쓰역 북쪽 출구에서 걸어서 15분. 하마마쓰 역에서 버스 탑승 후 '시청남쪽(市役所南)'에서 하차(8번. 30번. 40번. 46번 등)
【홈페이지】 https://www.entetsuassist-dms.com/hamamatsu-jyo/
-우나기 후지타 하마마쓰 역점 (うなぎ藤田 浜松駅前店)
1892년에 창업한 노포 하마마코 우나기 전문점. 관동식으로 장어를 찐 다음 소스를 발라 구워 낸다. 하마마쓰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도 본점이 있지만, 역 바로 앞에도 있다. 우나기 오차즈케 4,840엔, 우나쥬 5,280엔.
【주소】 静岡県浜松市中央区砂山町322-7ホテルソリッソ浜松2階
【전화 번호】 053-452-3232
【가는 법】 JR 하마마쓰 역 남쪽 출구에서 걸어서 1분.
【홈페이지】 http://www.unagifuji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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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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