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기만 했던 학교 생활동급생들에게 크고 작은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는 학교 생활을 힘들어했지만 벗어나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교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임은희
그런데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그동안 교사들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어요. 아이가 받았던 풀배터리 테스트(정서, 인지, 사고, 행동습관, 생활방식 등을 측정하는 종합심리검사)결과와 행동발달사항을 말씀드렸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ㅇㅇ이는 재미난 질문을 많이 한답니다. 과학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아요. 비록 쓰진 않았지만(웃음) 받아쓰기 문장 열 개를 모두 외우고 있을 만큼 기억력도 좋아요. 어머님, 3학년 겨울에 교육청에서 영재원 학생들을 모집하거든요. 거기 한번 지원해 보는 건 어떨까요? 친구를 꼭 학교에서 찾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날 저녁,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너 오늘 받아쓰기 시험 볼 때 안 쓰고 가만히 앉아있었다며?"
"아냐! 다 썼어. 좀 늦게 쓴 거야."
"그래그래, 그런데 엄마가 학교 가서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왔거든. 너 나중에 교육청 영재원 지원해 보라고 하시던데? 과학 좋아한다 그랬다며."
"응, 과학 실험 좋아. 나중에 써보지 뭐."
"그래, 학교에서 공문 나오면 꼭 들고 와. 알았지?"
"음...... 그러지 뭐."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된 아이는 어느 날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어요. 서울시 ㅇㅇ교육청 영재원 학생 모집 공고였어요. 초등학교 4학년에 시작한 영재원 활동은 매년 자동진급을 하거나 시험을 통과하며 중학교 2학년까지 이어졌어요. 학교는 급식 때문에 다녔고, 영재원은 실험 때문에 다녔지만 아이의 세상은 아주 조금씩 넓어졌어요. 갑자기 교내 과학토론대회에 참여한다고 신청서를 쓰거나 친구들과 수박을 키운다며 난리를 치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2학년 때 선생님을 생각했어요. 아이가 하는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섣부른 판단보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셨던 그분을요. 아이는 이제 선생님의 얼굴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재미난 동화책을 읽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2학년 선생님은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가끔 안부인사를 드려요. 선물은 거절하셔서 드리지 못하지만 인사는 언제나 환영하시거든요. 은퇴하신 지 오래지만 여전히 선물보다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신답니다.
이ㅁㅁ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죠? 중학교 3학년인 아이는 올해 또 새로운 일에 도전했어요. 잘 되면 좋겠지만 안 되면 아마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할 것 같아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느릿느릿 잘 크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었던 2학년 교실을 가끔 생각해요. 맑은 날, 바람이 조금 불었고 창가엔 학생들이 키우는 작은 화분들이 있었어요. 저는 울고 있었고,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셨어요.
이후로도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날의 풍경을 떠올렸어요. 세상에 문장을 하나도 안 쓰다가 한 번에 썼다니까요?' 하시며 웃으시던 모습도 기억나요. 선생님, 그때 절 학교로 불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 전하며 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