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강만길)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11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정식출범했다.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강만길)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11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정식출범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5년에 발족했다. 이 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자 선정, 친일반민족행위의 조사,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국내외 자료수집 및 분석, 조사 대상자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진상규명보고서 작성 및 발간이었다. 위원회는 2009년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을 공표했다.
강만길은 이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상지대 총장의 임기를 막 마치고 난 뒤였다. 쉴 틈도 없이 2년 동안 친일 행위자들의 친일 행위를 밝히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임기는 4년이었으나 처음부터 이 일을 2년만 하겠다고 생각했고,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쳐 2007년 6월에 스스로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하고 3년여가 지난 2010년, 그는 동해안에서도 한적한 양양의 하조대로 거처를 옮겼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바닷가여서인지 노후에 택한 곳도 한적한 바닷가였다. 나이도 어느덧 70대 후반이었다.
기력이 더 쇠하기 전에 자신만의 시간을 더 갖고 싶었다. 노학자의 소박한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자서전을 쓰는 데 오롯이 투자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외진 곳이어서 찾아오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명사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노욕이 노추(老醜)로 이어지며 그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짓밟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강만길은 이들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하다. 모르기는 해도 그의 '은거'에는 여태껏 떳떳하고 청정하게 살아온 자신의 지조를 지키고자 하는 자계(自戒)의 의미도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귀향과 은거로 지조를 지킨 옛 선비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제 나처럼 곧 여든을 바라보게 된 우리 세대가 살아온 평생은 그야말로 역사적 격동기였다. 그 격동기를 우리 근현대사 전공자로 살아왔으므로 그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흔히 자서전 하면 대체로 정치인들이 많이 남기기 마련이던데, 역사학 전공자의 자서전은 그가 살아온 시대를 역사적 안목에서 되돌아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편 당대 역사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또 하나의 의미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한다. (주석 1)
이름깨나 있는 사람들의 자서전 중 일부는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만 알린다'라고 해서 '피알판'이라고 조롱받기도 한다. 물론 그중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비사 등을 알게 해 주는 소중한 책도 많다.
'격식 갖춘' 역사책도 필요하지만, 역사학 전공자로서 살아온 세월을 진솔하게 되돌아보는 일이 어쩌면 격식 갖춘 시대사류보다 오히려 우리 근현대사를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이 글은 굳이 자서전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역사학도 및 역사 선생이 평생을 통해 겪고 느낀 민족분단시대로서의 우리 현대사 경험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주석 2)
강만길은 2010년 5월에 자신의 '현대사 경험담'인 <역사가의 시간>(창비)을 펴냈다. 출판사의 책 소개처럼, '평생 우리의 근현대사를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한 지식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피알판'과는 거리가 먼, 제25회 만해문학상(2010)을 받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분량은 660쪽에 이를 만큼 적지 않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 1장 일제강점기의 끝자락을 산 이야기 / 2장 국민학교 6학년 때 해방을 맞은 이야기 / 3장 중학교 5학년 때 6.25 전쟁을 당한 이야기 / 4장 대학원생으로 4.19와 5.16을 겪은 이야기 / 5장 박정희 '유신' 독재 아래 산 이야기 / 6장 박정희 살해사건 후 '서울의 봄'을 산 이야기 / 7장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 교수가 된 이야기 / 8장 복직 후 학문 방향이 바뀐 이야기 / 9장 6.15 남북공동선언에 동참한 이야기 / 10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야기 / 11장 6.15 선언 5주년 기념행사 이야기 / 12장 상지대학교 총장 시절의 이야기 / 13장 그 밖에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들 1 / 14장 그 밖에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들 2 / 글쓰기를 마치면서 / 부록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일지 / 해제 신용옥 / 강만길 연보 / 저서 목록 및 상훈 경력."
개정판(강만길 저작집 18)으로 다시 펴냈을 때 신용옥(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상임이사)은 이 책을 네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첫째,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 한 지식인 역사학자의 자기성찰적 기록, 둘째, 역사적 사회주의를 안고 가는 평화통일 민족주의자, 셋째, 지식인 역사학자의 책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학의 현재성과 대중성'이었다.
그중 두 대목을 골라 소개한다.
"이 자서전은 앎을 통해 깨우쳐 가고 그 앎을 현실의 삶에 일치시키려 한 지식인의 자기성찰적 기록이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모순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을 위해 근본주의적 태도로서 그 모순을 초극하려는' 지식인의 역할을 힘써 다하고자 노력한 한 역사학자의 고독을 기록한 것이다."
"그에게 역사란 화석화되어 정체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 과거이다. 그에게 역사학이란 온전한 과거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이 미래를 향해 변증법적으로 변화 발전해 가는 과정을 규명한 것이다. 그는 늘 역사 변화의 맹아를 발견하고 그 싹을 소중히 틔워가고자 했다." (주석 3)
강만길은 역사학자로서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 문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동안 겪은 고충도 털어놓았다.
일제강점기의 좌익계운동을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가르치고 쓰다가, 그리고 역사학 전공자로서 민족의 통일문제 특히 평화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다가 좌파 민족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좌경 연구자와 좌파 민족주의자의 공통점이 무엇이며, 차이점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함부로 이름 붙이지만 '좌파'나 '좌익'은 곧 죄인이어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던 세상을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석 4)
주석
1> 강만길, <역사가의 시간>, 창비, 2018, 10쪽.
2> 위의 책, 13쪽.
3> 위의 책, 642~648쪽, 발췌.
4> 위의 책,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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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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