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의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
이상기
동해 바닷가에서 지낸 지 10여 년쯤 되던 때 현대사는 또 한 차례 곤두박질쳤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수구냉전 세력이 다시 득세하고, 민주주의는 역행하고, 남북관계는 퇴행을 거듭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에 진척되었던 남북관계는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갔다.
강만길은 눈 감기 전에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반도에 평화적인 교류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남북관계는 아주 빠른 속도로 냉각되어 갔다.
지인과 제자, 후학들이 가끔 먼 곳까지 그를 찾아왔다. 그럴 때면 그들과 밤을 지새우며 현안을 토의하기 일쑤였다. 이를 위해 그는 원고를 미리 준비했다. 토론이 끝나면 이 원고를 수정하고 보강했다. 이런 원고가 어느새 14편이나 쌓였다.
당시 <내일을 여는 역사>는 도서출판 선인에서 출간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이 원고들을 묶어 2013년 봄에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2018년에 창비에서 <강만길 저작집 16>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그는 개정판 출간에 부치는 머리말에서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의해 모처럼 남북화해 분위기, 즉 평화통일 지향으로 나아갔던 우리 땅의 남북관계가 이명박 정부에 와서 모두 무위로 되고 말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란 말이 있지만, 중대한 통일문제가 그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하겠지요. 그렇게 된 원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필자 같은 역사학 전공자의 처지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해서 이명박 정부가 분단민족사회 정부로서, 그리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로서 갖추어야 할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정부거나, 아니면 반역사적 정부였기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전쟁통일 및 흡수통일 지향적 정부거나 말입니다. (주석 1)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01. 왜 거듭 분단과 통일을 말해야 할까요
02. 강점되기 전에도 우리 땅 분단위험이 있었습니다
03. 강점되기 전에 우리 땅의 국외중립론이 있었습니다
04. 청일·러일전쟁 결과 우리 땅이 일본에 강점됐습니다
05. 우리 땅의 불행이 동아시아의 불행으로 번졌습니다.
06. 실패한 민족사는 반드시 반성해야 합니다.
07. 민족분단시대에는 좌우합작독립운동이 주목됩니다.
08.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다시 좌우합작정부로 됐습니다
09. 해방과 함께 '원한의 38선'이 그어졌습니다.
10. 6·25 전쟁으로 분단이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11. 6·25 전쟁 뒤 평화통일론이 정착되어 갔습니다
12.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평화통일이 시작됐습니다.
13. 남북화해로 북미·북일 수교가 될 뻔했습니다.
14. '우리의 소원' 통일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글쓰기를 마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는 <글쓰기를 마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에서 책을 쓰게 된 목적과 우리 민족의 '바람직한 장래'에 대해 덧붙이며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을 쓴 주된 목적은 물론 우리 민족사회가 당면한 합리적 통일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분단 질곡이 역사상 어떤 연원과 조건에서 빚어진 것인가를 먼저 알고, 과거에도 어떤 경우에 분단위험이 있었고 그 극복방편으로는 어떤 것이 제시되었는가 하는 문제 등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분단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분단된 과정과 조건을 역사적으로 살펴본 결과 앞으로 변화하는 세계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가 어떤 방법으로 강구되어야 하겠는가를 생각하고 단견으로나마 의견을 제시해 본 겁니다. 분단질곡 분단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민족사의 '바람직한 장래'를 가능한 내다보려 한, '진보적' 글을 쓰고 싶었던 겁니다. (주석 2)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이 책의 '해제' <'분단고통'을 넘어 '통일전망'을 위한 안내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 '강연의 글'을 마치며 저자는 '한 가지 꼭 지키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서 "언제나 현실적 조건에만 얽매이지 말고 미래지향적 입장에서 살고 또 가르치며 글 쓰자는 생각이었다"고 술회한다. 이어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민족분단시대는 반드시 극복되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당신이 후진양성을 위해 만든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의 설립 위치를 밝힌다. 또한 평생을 미래지향적 평화주의 역사학자로 길을 걸었다는 이유로 '친북좌파'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고 털어놓으며, 하지만 본인은 이에 연연함이 없이 '분단질곡 분단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민족사의 바람직한 장래를 내다보려 한 '진보적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 선언한다. (주석 3)
주석
1> 강만길,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 창비, 2018, 9쪽.
2> 위의 책, 328~329쪽.
3> 위의 책, 335~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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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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