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단체에서 입양한 반려견 밤이.
김준수
큰 개를 무서워하는 반응 자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과, 그 감정에 기반해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따로 따져야 할 별개의 사안이다.
만약 보행자가 지나가는 개가 커서 무섭다면 '내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니 줄을 꽉 잡아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반려견이 없는 일행이 '먼저 지나갈 테니 잠시 비켜줄 수 있느냐'라고 묻거나, 반대로 '먼저 지나가라'고 반려견 보호자에게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려견 보호자라면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고, 서로 아무런 문제 없이 가던 길을 가면 된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상대에게 강압적인 요구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만약 당신이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다가와서 '당신이 우리보다 덩치가 커서 두렵다. 우리로선 당신이 문제를 일으킬지 아닐지 알 수 없으니, 미리 수갑을 차고 다녀줄 수 있을까'라고 요구한다면 어떨까. 사람에게는 무리한 요구인데 개라고 해서 괜찮은 걸까.
성소수자, 무슬림을 보고 '저 사람들을 보면 내가 무서우니 저들을 격리해달라'라고 하면 문제적 발언이라는 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행동이 아니라 정체성만 놓고 규제한다면 차별이자 혐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거 없는 규제가 해결책도 아니다. 해외에서는 강아지의 크기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드물고 오히려 한국에서 산책 중 시비가 발생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도 있다. 이를 놓고 보면 결국 진도믹스, 중대형견에 관한 문제도 입마개 강제 등 규제가 아니라 편견을 바꿔야 할 사안인 셈이다.
미디어가 편견을 퍼트릴 때, 폐해는 약자를 향한다
유튜브에는 자극적인 영상도 많고, 재미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시청자에게 편견을 전달하는 문제도 빈번히 지적됐다. 미디어를 통해 편견이 퍼질수록 폐해는 약자를 향하기 마련이다.
교통사고 장면을 다루는 '블랙박스' 관련 영상에서는 안전 운전 상식을 주로 담지만 여성 운전자가 사고의 원인이라며 '김여사'라고 여성을 조롱하는 경우도 있다. 정작 통계에서는 남성 운전자의 사고 발생률이 3.3배 높았다(관련기사 :
'김여사' 어쩌구... 한국 남자들 참 찌질하다 http://bit.ly/Pjt0PA)
성범죄 허위 신고가 20~50%에 육박한다는 '꽃뱀' 담론도 유튜브와 각종 소셜미디어에 넘쳐나지만, 실제 통계를 살펴보면 편견이었다(관련기사:
성범죄 18~50%가 '꽃뱀 자작극'이라고? https://omn.kr/ooxd).
노키즈존이 당연한 처사라며 여성 혐오('맘충')나 아동 혐오를 담은 영상도 유튜브에 많지만, 경찰청이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업원에 대한 폭언과 영업방해 등 '갑질 횡포' 가해자의 89.6%는 남성, 특히 전체 중 96.2%는 성인이었다고 한다.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사회자인 설채현 수의사는 2021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진돗개가 다른 견종에 비해 개물림 사고가 독보적으로 높다는 통계가 없"고 "행동학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보이느냐. 이것도 아무런 통계가 없"다고 말했다. '큰 개는 사납다'는 편견을 큰 고민도 근거도 없이 담아 비판받은 '존중냉장고'가 다음 편에서는 사회의 편견을 깨는 시도를 부디 보여주길 바란다. 반려견 문화에서만 하더라도 여성 보호자가 강아지 산책 때 듣는 막말, 품종견이 아닌 믹스견을 보는 사회의 시선 등 방송 소재로 꼬집어 볼 편견은 무궁무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