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강소 순찰전라도 각 고을에 세워진 집강소. 혁명지도부는 수시로 순시하며 집강소 운영 실태 등을 점검했다. 박홍규 화백의 그림.
이영천(대뫼마을 촬영)
집강소를 통해 탐관오리와 탐학한 부호를 징치, 징계하고 다스린다. 권력을 수평으로 나누고 묫자리 송사 해결, 삼정 문란과 불법 고리채 엄단, 곡물 가격 앙등을 막는 방곡령 시행, 소소한 부채의 억울함 등등을 해소해낸다.
하지만 초기엔 순조롭지 못했다. 사소한 보복 행위가 있었고 강제로 재물을 빼앗거나, 부잣집 딸과 반강제로 결혼하는 사례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중심을 잡고 강력한 규율로 자치정부 본연의 모습을 갖춰나간다. 이렇듯 집강소는 우리 역사에 전무후무한 진정한 '해방공동체'였다.
혁명, 그리고 칠반천인
'칠반천인'은 천대와 멸시로 밑바닥에서 살아간 계급이다. 이를 사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한다.
조선 시대에 구별하던 일곱 가지 천한 사람. 주로 조례(서울 각 관아에서 부리던 하인)ㆍ나장(의금부에 속해 죄인을 문초할 때 매질하는 일과 귀양 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일을 맡아보던 하급 관리)ㆍ일수(물을 관리하는 직책)ㆍ조군(세금을 나르는 배 선원)ㆍ수군(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군대)ㆍ봉군(봉화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군사)ㆍ역보(역졸(驛卒)과 보인(保人)의 별칭)를 이르며, 이 밖에 노비ㆍ기생ㆍ상여꾼ㆍ혜장(鞋匠, 갖바치)ㆍ무당ㆍ백정 혹은 노비ㆍ영인(악공과 광대)ㆍ기생ㆍ혜장ㆍ사령ㆍ승려를 이르기도 한다.
어떤가? 이런 이들이 없었다면 사회구성체가 제대로 굴러갔을까? 관아나 군대에서 허드렛일에 종사한 부류는 그래도 좀 나아 보인다. 노비와 기생, 갖바치, 무당과 백정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에 있으면서도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취급받았다. 그들이 느꼈을 비애는 얼마나 처절했을까? 더구나 세습되는 계급의 질곡이라니. 여기에 얹힌 성(gender)차별은, 상상을 초월하는 억압기제였다.
전주화약에서 내건 폐정개혁 12개 조항 중 요구한 계급해방 내용은 즉자적이며 직접적인 두 가지다. 바로 '노비문서는 소각할 것. 칠반천인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서 패랭이를 벗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