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쪽 사진은 간송미술관 전경. 아래 사진은 위창 오세창 선생님이 쓰신 보화각 글씨. 힘이 넘친다.
위 오창환 아래 글씨 오세창 사진 오창환
전형필 선생님(1906~1962)은 20대의 어린 나이에 가문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후에, 민족정기를 보전하기 위해서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선생님을 정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도와주신 분이 당대의 명필이자 대문장가였던 위창 오세창 선생님이셨다.
전형필이 선생님이 성북동에 미술관 터를 구입하셨을 때, 부지가 선잠단(先蠶壇)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단장(北壇莊)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박길용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 이름도 보화각이라고 지어주셨다. 물론 간송(澗松)이라는 전형필 선생님의 호도 지어주셨다.
보화각이라는 이름은 금은보화(金銀寶貨)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보물을 보존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보화각(葆華閣)이라고 지으셨는데, 보호할 보(保) 자 위에 풀 초(艸) 변이 있다. 그 글자는 사전에 나오지 않아서 마침 전시장에 나와있는 큐레이터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저 글자는 보호할 보자에 풀초변이 있는데 사전에 안 나와요"
"그 글자는 오세창 선생님이 보화각을 위해서 만드신 글자라서 사전에는 없어요."
아마도 숲이 우거진 품격 있는 미술관이 되라고 그렇게 지으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간송(澗松)이라는 호도 '산골짜기의 물'이라는 뜻의 간(澗) 자와 '소나무' 송(松) 자를 모아 놓은 것이니 지금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모습과도 흡사해서 무릎을 치게 된다.
1938년에 설립된 보화각은 전형필 선생님 타계하신 1962년 이후에는 간송 미술관으로 이어내려 온다. 엄혹한 일제치하와 해방 후 혼란 상황, 그리고 전쟁과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지켜온 미술관. 2019년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년 간의 보수를 거쳐서 재개관전을 하게 된 것이다.
대대적인 복원과 유물 정리 과정에서 박길용 건축가의 설계도가 발견되어서 1층 전시실에서 소개되고 있다. 옛날에는 트레이싱 페이퍼라고 하는 투명한 종이에다 설계 도면을 그리고 거기에다 빚을 투사해서 감광되는 것으로 설계도를 만들었다.
이때 감광된 색이 파란색이라 청사진 혹은 블루프린트(blueprint)라고 한다. 지금은 프린트 기술이 발전해서 블루프린트는 사라졌지만, 청사진이라는 말은 살아남아서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개략적인 계획을 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