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픽셀스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는건 신나는 일이었다. 사실 일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지도 않았다. 매일 밤 차를 바꿔가며 드라이브를 하는 것 같았다. 어디를 가도 다시 동네로 돌아올 수 있는 콜이 생겼다. 와, 내가 왜 진작 이 일을 몰랐을까, 연말이 주는 제법 쓸쓸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도 까먹은 채 그렇게 대리운전을 하다 새해가 밝았다.
그렇게 넘쳐나던 콜들이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아무리 앱을 들여다 봐도 한 시간에 하나도 뜨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계속 이유를 물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새해는 알코올의 힘이 그닥 필요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그것이 한해이든, 삶이든, 그것과 마주한다는 것에 관하여 인간은 취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작심삼일로 끝나겠지 했던 사람들이 술 없는 삶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콜은 거의 10분의 1로 줄었지만, 근처 기사님 수를 알려주는 숫자는 3배로 늘었다. 깜빡이는 콜들 속에서 휴대폰을 붙잡고 간절함으로 나와 같은 앓이를 하실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좀 쑤셨다. 몇 달이 지나도 얼어붙은 콜들은 해빙을 맞이할 줄 몰랐다. 벚꽃이 화려하게 개막이 되었을 쯤에야 다시 고개를 들기는 했지만 연말의 그 장엄함과 비할 것은 아니었다.
최근 어떤 손님이 '대리기사 하시면서 뭐가 제일 힘드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참을 고민할 것도 없이 이런 대답이 나왔다.
"사실 이 일의 강도가 그렇게 힘들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더 험한 일이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이건 어떻게 보면 '운전'을 할 뿐이니까요. 다만, 힘든 건 콜이 없어서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제가 잠실에서 김포까지 4만 원을 받고 운전을 했는데 돌아올 때 적절한 콜이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오면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걸리거든요. 그러면 그 시간이 흩어지는 거잖아요. 만약에 거기서 콜이 있어서 어디든 갔다가 돌아올 수 있다면 돈을 버는 것인데. 돈을 벌면 재미있는데,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요즘은 하루에 십 만 원 이상 버는 것이 쉽지 않다. 근래 들어서 딱 한번 운수 좋은 날이 있었다. 거점인 잠실에서 용인으로 갔다가, 용인에서 다시 강남으로 넘어오고, 강남에서 잠실로 넘어오는, 텀이 거의 없는 마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처럼 완벽한 구성이었다.
순식간에 8만 원을 벌고 집 근처까지 왔다. 그때 집 앞에서 2만 원짜리 콜이 떴는데 가까운 일원동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냥 마무리 할까, 가볍게 다녀올까 하다가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니까 가보자 하고 잡았다.
목적지에 거의 다와서 네비를 살짝 헷갈려서 3분 정도가 늘어났다. 뒤에 탄 손님이 불편한 기색을 감출 생각이 없었는지 "에헤이, 늘어났잖아, 거기서 빠져야 하는데 "라고 말하니 긴장감이 멤돌았다. 경로는 재탐색 되었고 바로 앞 신호등에서 유턴을 해야했는데 이미 신호는 녹색불로 바뀌었다. 늦은 시간이라 앞에 차는 오지 않고 있었는데 뒤에서 손님이 "유턴, 유턴해요"라고 외쳤다.
당연히 하면 안 되는 타미밍이었지만, 무언의 압박과 어차피 차가 안 오니까라는 합리화가 뒤섞이면서 유턴을 해버렸다. 3초가 지났을까,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경찰이 따라왔다. 딱지를 끊었다. 무려 7만 원 짜리였다. 벌점도 가해졌다. 그렇게 유턴을 외치던 손님은 기도라도 하는지 조용히 있었다.
속상하다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손님에게 물었다.
"이거 제가 처리해야 하나요?"
"그럼요?"
"손님이 유턴하라고 하셨잖아요."
"하라면 다 합니까? 안 걸리게 잘했어야죠."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무력했다. 그래, 그런 선택을 한 내가 잘못한 거지 뭐. 그날 번 돈의 반 이상을 벌금으로 고스란히 납부했다. 여기 안 왔으면 8만 원 가지고 돌아가는 건데 3만 원이 남았을 뿐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쩐지, 운수 좋은 날이라 했다.
연말이 여전히, 무척 그리운 요즘이다. 매일이 운수 좋음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던, 그저 좋았던 그 나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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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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