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 걸려있다.
남소연
5월 30일부로 22대 국회가 시작됐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본회의에서 의결되지 못한 법안들은 21대 국회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자동폐기됐다. 그렇게 폐기된 법안 중 '모성보호3법'으로 불리는 법안들이 있었다.
사용 가능한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고, 사용하지 않은 육아휴직의 기간의 2배를 육아기 단축근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며 육아기 단축근무의 대상이 되는 자녀의 연령을 올리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임신기 단축근무의 가능시점 36주 이후에서 32주 이후로 앞당기는 '근로기준법', 배우자 출산휴가 전부를 유급휴가로 전환하는 '고용보험법'이 그것이다.
이 법안들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만큼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었고, 또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내용인 만큼 21대 국회에서 통과되리라 기대를 모았다.
특히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던 것은 아무래도 육아휴직 연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육아휴직 기간이 현행 1년에서 1년 6개월로 확대돼 남성과 여성 보호자의 휴직을 다 합쳐서 최대 3년까지의 육아휴직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이 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터였다.
육아휴직이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들에게 필수적인 제도인 만큼 법이 언제 시행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빠른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것과 달리 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흔히 말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언제쯤 개정된 법을 적용받을 수 있을지 문의하는 글부터 법안의 의결과 시행을 속히 요구하는 청원에 동참해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육아휴직 기간 연장', 디테일에 숨겨진 함정
육아휴직 기간 연장에 관한 내용은 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아닌 이주환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포함돼 있었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했을 당시에는 예산 관련 문제로 내용이 빠졌고, 이후 의원실 법안을 통해 휴직 연장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해보니 육아휴직의 기간을 1년 이내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조문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6개월 내에서 휴직기간을 추가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다는 형식으로 개정안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19조(육아휴직) ② (현행) 육아휴직의 기간은 1년 이내로 한다. (신설) 다만, 같은 자녀를 대상으로 부모가 모두 각각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하거나 「한부모가족지원법」 제4조제1호의 모 또는 부에 해당하는 근로자의 경우 6개월 내에서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법의 핵심은 디테일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으로 시작하는 단서를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개정안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6개월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1)부모가 각각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하거나 2)한부모가정이어야 한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육아휴직을 최대 1년 6개월까지 신청할 수 있다는 게 개정안의 핵심인데 이를 언급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사만 보면 누구나 육아휴직을 1년 6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을 것처럼 오인하기에 충분했다. 정작 중요한 내용은 빼고 법이 시행되면 모든 양육자가 육아휴직 기간을 6개월 연장할 수 있다는 듯이 보도한 언론들의 죄가 중했다.
한부모가정의 '양육자가 휴직 기간을 연장했을 때 생활비를 보조해주는 제도가 별도로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일단 접어두고서라도 부모가 모두 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첫 번째 조건은 일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취지로 이런 조건이 생긴 것인지 묻기 위해 관련 부처인 고용노동부에 전화를 걸었다.
단서의 취지를 묻자 '여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가 육아휴직을 쓰도록 유인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즉 남성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도무지 현실과 동떨어진 아이디어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우리나라 남성들이 제도적으로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긴 육아휴직을 보장받고 있지만 실제 휴직의 사용률이 한 자릿수에 그치며, 가입국 중 육아휴직의 실제 사용 일수가 가장 적다는 점을 지적했던 기사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개정안이 그 자체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육아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 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대한민국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직원들이 일방적인 근로조건 변경이나 승진 누락, 퇴사종용 등과 같은 불이익에 대한 걱정 없이 육아휴직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도록 강력하게 조치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별도로 제출했는지 물었다. 따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추가적인 연계법안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됐을 때 실제로 육아휴직 기간의 연장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는 양육자들이 얼마나 될까.
이 개정안을 심사했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법안 검토보고서 또한 개정안에 따른 혜택이 사실상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남성이나 여성 누구 하나라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려운 직장에 다닌다면, 개정안이 시행돼도 남성과 여성 모두 1년 6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검토보고서는 말미에 OECD 주요 가입국가의 유급 육아휴직 기간은 부모 합산해 2년을 넘지 않는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는데, 이렇게만 지적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절반의 인식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출생률이 가장 낮은가? 육아휴직의 기간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