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에서 기자와 이야기 나누는 김병진 씨.
변상철
김씨는 명백한 국가폭력피해자이다. 재일교포로서 늘 조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는 청년시절이던 1980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학해 졸업한 뒤, 198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곧바로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강제 연행된 뒤, 모진 고문을 당하며 간첩으로 조작되며 그 모든 꿈은 산산조각 났다. 그가 일본에서 생활할 때 고베지역 재일한국학생동맹(아래 한학동)에서 조직 활동을 함께 했던 선배 '서성수'가 소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상부지도원'으로 구속되면 김씨 역시 같은 혐의로 구속되었던 것이다.
결국 상부선인 서성수씨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공범인 김씨는 서씨와 함께 재판을 받지 않고, '공소보류'라는 처분을 받은 뒤 1984년부터 2년간 보안사에서 강제 근무하였다. 말만 근무였을 뿐, 실제 그가 한 일은 보안사에서 불법 강제 연행되어 온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조사할 때 통역을 해 주는 등의 일이었다고 한다.
김씨가 2년간 보안사에 강제로 일을 하며 목격했던 보안사의 간첩사건은 그가 쓰 책인 <보안사>에 기재된 것만도 여러 건이다. 대표적인 것들이 '이종수', '박박', '서성수', '허철중', '윤정헌', '조일지', '조신치', '유지길' 등의 사건이다. 이 중, 김씨와 마찬가지로 공소보류 처분 된 유지길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피해자들은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선고를 받았다. 특히 김씨의 상부선으로 지목되어 무기징역을 받았던 서성수씨 역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2017. 8. 27. 대법원 무죄확정).
문제는 상부선이었던 서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국가배상 등의 조치를 받았지만, 서씨의 하부선이었던 김씨는 국가로부터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9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김씨의 인권침해 사실이 인정되었고, 2017년 그의 상부선이라는 서씨의 재심무죄선고 결정이 났으며, 2024년 2기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결정을 재차 받았으나, 김씨는 여전히 국가로부터 사과는커녕 명예회복 등에 대한 제대로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김씨는 2005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했던 민사소송 결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씨는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하기 전인 2005년 서울중앙지법(2005가합10659, 제34민사부)을 통해 <보안사> 서적의 부당압수, 여권 발급 거절로 인한 입국 방해, 보안사의 불법연행 피해, 보안사로부터의 협박과 위협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한 보안사의 불법연행에 대한 피해도 함께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 전이었던 시기라 국가로부터 어떠한 증거나 서류를 확보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당시 재판부는 <보안사> 서적을 불법적으로 압수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보안사로부터 불법연행 당한 사실 역시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다.
보안사의 협박 주장에 대해서도 증거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2005년도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의 패소로 인해 그 뒤 무려 2차례에 걸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국가로부터 받을 사과나 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그렇다면 김씨가 국가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앞서 민사재판에서 판단한 결정을 또다시 판단할 수 있느냐는 소위 '기판력'(확정된 재판의 판단 내용이 소송 당사자 및 같은 사항을 다루는 다른 법원을 구속하여, 그 판단 내용에 어긋나는 주장이나 판단을 할 수 없게 하는 소송법상의 효력)의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005년도의 재판에서 패소한 이유는 증거 부족으로 김씨의 주장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부족한 증거는 2009년도, 2024년도 진실화해위원회의 증거로 충분히 보강되었다.
2005년도 소송 당시 확인되지 못했던 보안사의 불법행위와 외교부의 입국 방해 등의 기록이 확인되었음으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셈이다. 형사소송과 다르게 민사소송의 경우 신규증거에 의한 재심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나, 국가의 명백한 잘못이 밝혀졌음에도 피해자가 아무런 조치나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또 한 번의 피해를 당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또한 김씨는 여전히 검찰에서는 '공소보류' 처분을 받은 사람으로 관리되고 있다. 물론 그의 '공소보류'는 1986년도에 해제되었다고 하나 그가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 자체는 취소되지 않고 있다. 그의 상부선이었던 서성수씨가 재심에서 무죄 무죄가 확정되었기에 서씨와 연루되어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던 김씨의 처분 역시 검찰직권으로 취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만났던 김씨는 '내 나이도 이제 많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실 이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조금 지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수십 년간 싸워왔는데 다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한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 몰라서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아내와 자식들을 보면,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김병진씨와 한국 정부와의 싸움은 40년 이상 계속 되어 오고 있다. 그 사이 진실화해위원회 등에서 김씨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결정도 몇 차례 받았다. 그러나 같은 국가기관 안에서도 김씨에 대한 '사과'와 '조치'를 결정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김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기관이 있다는 것은 제도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의 허점을 확인했다면 사회가 그것을 고치고 메꾸면 되는 것이다. 법무부와 검찰, 그리고 법원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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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가는 사과하지 않는가" 김병진씨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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