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과 선후배·동료 작가, 독자들이 함께 한 북 콘서트.
이병철 제공
- 선후배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시집과 산문집 출간 후와는 다른 반응이 있었을 것 같다. 어땠나.
"재밌게 읽었다는 반응이 많다. 내 청소년기가 자전적으로 담겨 있는 시들도 있어서 시를 읽으며 시인을 알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몇몇 시들에는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거의 다 친구들이나 주변인들 이름을 가져다 쓴 것이다. 시집 출간 전에 친구들한테 '네 이름이 나온다'고 하자 다들 흔쾌히 기뻐했다. 다만 어떤 인물로 등장하는지, 어떤 내용인지는 얘길 안 해줬는데, 시집을 읽고 나서 얼굴이 빨개지는 녀석들도 있을 것 같다."
- 책의 마지막에 당신의 '낚시 사랑'이 읽히는 글이 실렸다. 당신이 청소년에서 어른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시(詩)와 낚시 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뭔가.
"역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가족의 조건 없는 그 무한한 사랑. 어릴 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몰랐다.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끌어안고 쓰다듬고 "사랑해"라고 말해야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세가 기울어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도 당신들의 삶을 다 제쳐두고 자식을 위해 사셨다. 그 억척스럽고 지난한 삶에서 다정함이나 살가움 같은 게 참 힘들고 어렵다는 걸 나이 먹으니 좀 알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에 보내야 한다, 삼시세끼 먹이며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부모님의 그 일념이야말로 가장 뜨거운 사랑이었다."
- 이번 책이 10번째 저서라고 들었다. 당신 나이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그처럼 맹렬한 집필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건지.
"술 마시고 놀고 낚시 다니고 여행 가는 등 바깥으로 보이는 한량의 생활이 압도적인 것 같아도 실은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읽고 쓰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항상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삶의 태도가 있는 듯하다. 가장 큰 동력은 열등감과 무력감이다. 어떤 글을 써도 만족스럽지 않다.
시를 쓰면 마음에 들지 않아 산문을 쓰고 산문을 쓰면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비평을 쓴다. 비평이 형편 없어 다시 시를 쓴다. 벌써 10년 가까이 매주 혹은 격주 쓰고 있는 신문 칼럼은 문학적 글쓰기를 위한 일종의 준비 운동으로 여긴다. SNS에 게시물을 올릴 때도 장문을 쓰는 편이다. 누가 읽건 말건. 글을 쓰지 않으면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라 여긴다. 나에게 쓸모란 use이자 write다."
-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책은 뭔가.
"세 번째 시집의 원고가 꽤 모였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50편쯤 되는데 그중 20~30편은 버리고 새로 쓰고 싶다. 다음 책으로는 시집이 가장 앞줄에 있고, 박사학위 논문을 조금 라이트한 학술서적으로 고쳐 출간할 생각도 있다. 2019년에 연재한 '경북 바닷길 기행문'에다 다른 지역 여행기를 합해 전국 기행으로 완성한 가칭 '길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원고가 있는데, 참 애착이 가고 마음에 들지만 출간은 쉽지 않아 보인다. 책을 내줄 출판사가 있으면 좋겠다. 일전에 한 출판사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평전을 써보자고 제안했는데, 아직 시기상조라 여겨 정중히 거절했다. 클라라 주미 강의 팬으로서 언젠가는 꼭 책을 쓰고 싶다."
-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문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는 어떤 보람과 어려움이 있는지.
"비전임 교원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늘 괴로워해야 하는 일이다. 출강하는 두 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있지만 사실 시간강사의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다. 강의와 학생 지도, 상담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질 않으니 외부강의나 집필활동, 부업 등을 겸할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엔 지난해까지 배달 라이더로 일했다. 비전임 교원은 방학에 급여가 지급되지 않고, 건강보험도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그리고 학교에 연구실이나 휴게실이 될 만한 공간 또한 제공되지 않으므로 강의와 강의 사이 휴식이나 학생 상담 같은 게 어렵다.
이번 학기 화요일엔 아침 10시부터 13시까지, 13시부터 16시까지, 16시부터 18시까지, 18시부터 21시까지 시간표상으로는 쉬는 시간이 1분도 없이 11시간 연강을 하고 있다. 잠깐 쉬거나 밥이라도 먹으려면 수업을 일찍 끝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학생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가 좋아서, 소설이 좋아서 반짝이는 그 눈빛들을 보는 일은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수업을 통해 무언가 얻어갈 때 정말 기쁘다. 강의실 밖에서 술 사주는 것도 강사의 행복이다. 월급을 술값으로 다 써도 학생들 사주는 건 아깝지 않다."
청소년,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