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대화할 외국인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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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다녀온 이후로, 영어 공부에 대한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그러나 오랜 기간 혼자서만 중얼거렸더니 슬슬 고독이 밀려왔다. 서툴러도 거침없이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기억들이 자꾸 소환되었다. 영어로 대화할 외국인 친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쉽사리 인복은 굴러들어오지 않았고, 제 2의 영어 수난기가 찾아왔다.
언어교환 카페도 수시로 기웃거려 봤지만 친구는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렵게 소개로 만난 해외 교포는 매번 약속에 늦었다. 급기야 악천우를 뚫고 간신히 카페에 도착한 어느 날, 긴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렸건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주한 채 서러움이 밀려와 그만 눈물이 터져나왔다.
우연히 홍대에서 길을 묻는 외국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목적지까지 직접 가이드 해주고 그 거리만큼 대화하며 귀동냥을 했다. 그때 제일 많이 사용한 "It takes about 15 minutes, Follow me!"("거기 한 15분 걸려요. 저 따라오세요.")는 지금도 툭 치면 입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영어 채팅을 사칭한 금전 피해도 겪어봤다. 잃어버린 돈보다 원망과 자책감이 더 컸다. 남들은 외국인 친구를 쉽게 잘도 사귀더만 왜 나에겐 인연보다 시련이 주어지는 걸까. 다들 술술 하는 영어가 나는 왜 시원스레 들리지도, 뱉지도 못하는 걸까. 급기야 교사의 발음조차 엉성했던 영어 조기교육 1세대 시절까지 탓하게 되었다.
또다시 혼자 중얼대며 영어공부를 이어갔다. 힘들다고 잠시 내팽겨 뒀던 시간들 또한 제법 쌓였던 터라, 더이상 같은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프랑스 공항에서의 섬뜩했던 기억들을 떨쳐내고 싶었다. 싱그러운 햇살 아래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눴던 미국에서의 좋은 추억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노모와 영어로 대화할 날도 올까
시간이 약이 된 걸까. 애를 쓸 땐 그렇게도 안 되더니 비로소 외국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그녀와 영어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은 참으로 이채롭다. 아직 틈틈이 번역기를 돌려야 하는 수고를 안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차분히 기다려주는 그녀의 배려를 되갚기 위해서라도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겠다.
챗GPT(Open AI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와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세상도 열려, 이제 굳이 사람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며 한 유튜버는 추천 앱들을 열거했다. 그러나 아직 나는 사람의 따뜻한 눈을 읽으며 교감하는 것이 마음에 더 와닿는다. 더욱이 오랫동안 갈망했던 언어교환 친구를 사귀었으니, 나 또한 열심히 한국말을 가르쳐 줄 생각이다.
언제부턴가 팔순의 엄마도 영어 공부를 시작하셨다. 사회복지관 수업과 유튜브를 통해 배우고 계신다. 딸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교재의 예습을 거른 적이 없을 만큼 성실하게 매진 중이다. 아마도 단어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아실 듯싶다. 영어 만학도가 집 안에 둘이나 생겼으니, 언젠가 밥상을 사이에 두고 모녀가 영어로 대화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의 가사가 어슴푸레 들려온다. 막혔던 귀가 서서히 뚫리려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영어강의 플레이를 누른 다음 집을 나선다. 길을 걸으며 연신 중얼거리는 나의 영어 일지, 오늘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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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떼이고 바람 맞아 울고... 나의 영어 고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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