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6동 국토교통부 출입구 맞은편에 파란색 천막 한 동이 세워졌다.
김선재
지난 5월 24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6동 국토교통부 출입구 맞은편에 파란색 천막 한 동이 세워졌다. 천막에는 임시로 제단이 설치됐고 영정사진 여덟 위가 놓였다. 모두가 전세사기 희생자들이었다. 이날 '대전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 소속 회원 10여 명은 분향소를 차리고 고인을 추모하며 명복을 빌었다.
곧이어 점심시간이 됐다. 출입구에서는 국토부 관계자로 보이는 공무원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대책위 장선훈 공동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청사에 계신 공무원 여러분. 저희는 전세사기 피해자입니다. 벌써 여덟 번째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저희 뒤로 그 8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분향소를 마련해 놨습니다. 잠깐만이라도 시간을 내주셔서 그분들에게 꽃 한 송이 정도는 전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추모에 돈이 들어갑니까"
5월 13일 전세사기 문제 주무부처인 국토부 박상우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실언을 쏟아냈다. "전세를 얻은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는 이른바 '덜렁덜렁' 발언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 발언에 다시 한번 깊은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국토부 앞 천막 분향소는 국토부에 대한 항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향소가 차려진 3시간 동안 이곳을 들러 분향 헌화하는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희는 덜렁덜렁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를 당했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저희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저희를 살려낼 방안을 마련해 주시겠습니까? 어제도 피해자 단 한 명도 없는 토론회를 개최해 놓고 '실효성이 없다. 이거는 실행할 수 없다. 선 구제를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렇게 반대만 하십니까?
3시간이 넘는 동안 분향소에 들러서 추모해달라고 그렇게 외쳤는데, 단 한 명도 와주지 않으셨습니다. 국토부는 누구를 위해 그 안에서 일을 하고 계신 겁니까? 세입자들은 전세사기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에 밥 한술 못 넘기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국토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추모를 해달라고 저희가 요구하는 게 돈이 들어갑니까? 아니면 세금이 들어갑니까? 선 구제를 반대하는 그 이유도 결국 세금인데 그 세금을 누가 냅니까? 저도 전세사기 피해자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매달 월급쟁이로 생활하면서도 세금 한 번 밀린 적이 없는데, 제가 낸 세금은 부실 건설사를 살리는 데 쓰이고, 그에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으로 (저를) 살려달라고 요구하는데. 왜 그거는 반대를 하고 계십니까? 분향소에 들리셔서 단 10초라도 아니, 단 5초라도 묵념과 헌화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말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85조 원을 풀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비용은 정부 추산 5조 원, 대책위 추산 5천억 원 정도이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는 피해자를 구제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가진 임차보증금 반환 채권을 주택도시기금으로 공공 매입하고, 최우선 변제금에 해당하는 보증금의 30%를 피해자에게 변제하는 방안이 골자였다.
하지만 피해자 일부 구제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에 대해 5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채권의 가치 평가가 어려운 문제 ▲ 가치를 산정한다고 해도 제시된 가격에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 ▲ 금년 주택도시기금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예산이 없는 문제 등이었다. 그렇게 피해자들이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개정안은 그대로 폐기됐다.
2023년 7월 2월 시행된 특별법은 2년을 시한으로 정했다. 이후엔 자동으로 효력이 사라진다. 특별법으로 피해를 구제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피해자들은 속만 끓이는 중이다. 지난 7일 장선훈 공동위원장을 만나 심경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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