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성 본 변경허가 심판'서를 펼쳐보이는 김준영씨.
유성애
- 어머니 김선경씨도 엄마 성으로 바꾸려했다. 지난 1월 팟캐스트에 나와 '딸의 방탄조끼가 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때 어땠는지.
"세상 든든했다. 엄마가 진술서 써주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해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때는 나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너무 절실했고, 똑같은 행동을 해주는 사람이 너무 필요했는데 엄마가 그걸 해준 거다. 엄마의 청구는 기각됐다. 엄마가 극I 성향인데, 그럼에도 (나 때문에) 팟캐스트나 영상에 자주 출연하신다.
얼굴 공개가 부담스러울 텐데 큰 용기를 내셨구나 싶고, 그게 큰 힘이 됐다. 똑같은 행동을 해주는 사람이 너무 필요했는데 엄마가 그걸 해준 거다. 내가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엄마 같은 엄마가 돼야지, 혹 자식을 낳지 않더라도 이 세상 어린이들에게 엄마 같은 어른이 돼야지 생각 했다."
- 법원 청구서가 60여 쪽으로 방대하다. 근데 이렇게 길어야 바꿀 수 있는 건가.
"맞다. 저도 이 정도로까지 해야지만 바꿔주는 건가 싶었다. 다만 이 때 목적은, 일단 엄마 성 쓰는 사례를 한 명이라도 더 만드는 거였다. '무조건 되게 한다'는 느낌으로 정말 모든 자원을 다 끌어냈었다. 진술서 분량도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저는 이 사안에 대해 몇 년 동안 생각해 온 거라 쓸 말이 많았다. 그나마 저는 직업작가라 글쓰기에 친숙하단 게 도움이 됐다. 그런데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잖나. 다른 분들과 같이 신청하다보니 그게 큰 장벽인 분들도 많더라. 이렇게 해야지만 성을 바꿔주는 세상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진술서 "본인의 결정을 응원한다"
- 아버지가 낸 진술서가 인상 깊다. "큰딸의 성을 아버지인 저의 성에서 제 부인의 성으로 변경하는 것에 동의하며 본인의 결정을 응원한다"며 이렇게 썼다. '저는 준영이를 포함해 자녀들이 성별로 인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준영이가 아버지인 제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제가 바라고 교육해온 양육 스타일과는 반대되는 고정관념입니다. (...) 세상에 자기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자신의 성마저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정해주고 있습니다. 일생 중 최소한 한 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성본을 변경할 기회가 주어지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아버지께선 말씀하셨다. '성인이 아예 새로운 성도 아니고 낳아준 엄마 성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거기에 내(아버지) 동의가 필요하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다른 참가자 사례를 볼 때, 법원에선 필수서류가 아닌데도 '친부 동의서'를 관행적으로 요구하고, 없으면 허가를 거의 안 해주더라. 바뀌어야 할 부분이다."
- 부성우선주의가 상위법인 헌법에 위배된다고 했는데. 좀 더 설명한다면?
"헌법 11조에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성별로 차별 받지 않는다', 10조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도 써 있다. 그런데 민법 781조의 부성우선주의, 아빠 성을 기본으로 하는 건 다른 이유가 없이 오로지 성별뿐이다. 저는 부성우선주의는 가정 내 평등과 행복을 달성하는 데에도 걸림돌이라 보고, 이게 민법이 헌법을 위반하는 거라고 본다."(실제로, 지난 2021년 "아빠 성 우선주의는 구시대 유물"이라며 관련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다. - 편집자말)
- 법원 허가 결정이 났는데, '굳이' 바꿔보니 어떤지.
"너무 좋다. 제가 바라던 일은 이 세상에 엄마 성 쓰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는 거였는데 한 명 늘어났잖나. 다른 참여자들까지 하면 최소 11명이 늘어났다. 저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비슷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름과 존재, 얼굴을 직접 보는 게 저한텐 큰 위로가 됐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옛날엔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는 이유만으로, 머리가 단발이란 이유만으로 기사가 나오곤 했다. 제가 이걸 한다고 했을 때 '전통이 무너진다'고 하는 분들 많았는데, 예전 전통을 다 따지면 우린 지금 직업 선택의 자유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도 없지 않았을까. 제가 그랬듯, 내 생각이 너무 소수라서 외롭다거나 내가 비정상인가 생각하는 분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셨으면 한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희망 잃지 않으시면 좋겠다."
이날 준영씨와 나는 눈을 맞추고 자주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얘기에 공감했다(준영씨를 나는 '신념 아이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인터뷰 뒤 찾아본 '굳이'의 의미가 그가 보여준 올곧은 태도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의 다른 사전적 뜻은 다음과 같다.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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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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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엄마 성으로 바꾼 이 사람, 뭐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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