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총동학혁명군 주력 무기이던 화승총. 이마저도 태반 군사가 갖지 못했다.
이영천(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촬영)
대개 우리나라 총의 사정거리는 100보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본 총 사정거리는 4~500보도 더 되었으며, 불이 총대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 불을 붙이는 번거로움이 없다. 따라서 비록 눈이나 비가 내린다고 해도 계속 쏠 수 있다. 동학군과 수백 보 떨어진 거리에서 동학군의 총탄이 미치지 못할 것을 헤아린 다음 비로소 총을 쏘았으므로, 동학군은 빤히 쳐다보면서 감히 한 발도 쏘지 못했다. (번역 오하기문. 황현. 김종익 옮김. 역사비평사. 1995. p269 의역)
이즈음 대구, 선산, 김천, 진주가 차례로 무너진다. 일본군 급습에 속수무책이다. 조·일 연합군은 섬진강을 방어선으로 전라도 불길이 경상도에 옮겨붙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황해도 사정도 경상도와 다르지 않았다. 해주가 용산에서 파병된 일본군에 함락되어, 북쪽으로 쫓겨 갔다. 그만큼 훈련이 잘되어 있는 일본군은 동학군의 정보를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첩보 활용과 작전 수행에 능숙한, 근대 전쟁을 수행하는 기본부터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