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장산성으로 오르는 길 산성으로 오르는 길을 정비해 둔 모습
이윤옥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을 뚱딴지처럼 만리장성의 시발점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중국의 만리장성은 1000킬로미터가 늘어났다. 왜 이들은 이렇게 남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두말할 이유도 없는 동북공정이 그 시발점이다.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중국 동북부(만주)에 있었던 고구려 등의 나라들이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정부 주도의 수정주의적 역사 왜곡을 말한다.
박작성에 대한 우리 쪽 기록으로는 <고구려본기>에 박작성 이름이 나온다. <삼국사기 권제22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寶藏王)>에 보면,
"〔7년(648) 9월에〕 태종이 장군 설만철(薛萬徹) 등을 보내 쳐들어왔다.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도달하여 멈추어 진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이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이를 막았다. (가운데 줄임) 박작성은 험준한 산에 의지하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지만 빼앗지 못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장에서 중국이 왜곡해 놓은 호산장성을 올려다보니 산성은 그다지 험준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산성 뒤편이 낭떠러지로 바로 압록강이 턱 버티고 있는 천하의 요새였다. 이러한 고구려 산성인 박작성(泊灼城)이 스리슬쩍 만리장성의 기점인 호산장성이라니 기가 찰 일이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고구려본기> 편에 나오는 박작성(泊灼城) 해설에 따르면, "박작성(泊灼城)은 압록강 하구의 고구려성이다.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 호산산성(虎山山城)에 비정된다. 현재 중국에서는 호산산성을 명나라 천리장성의 시발점으로 보고 장성 일부를 복원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고구려시대의 우물 유적이 발굴된 바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산장성 글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에 서면 만리장성의 '장성'을 딴 호산장성 글자가 보이고 그 아래는 만리장성의 기점이라고 써두었다.
이윤옥

▲ 중국의 역사왜곡의 현장 호랑이산(호산) 모양이라고 주장하는 산성 모습은 전북 마이산 모양(마이산보다 뾰족하지 않음)이다. 꼭대기에 있던 원래 산성 이름은 고구려 박작성이었던 것을 만리장성의 기점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왜곡의 현장 호산장성 모습. 동그라미 표시는 산성 정상이고 네모 표시는 답사단이 올랐던 곳.
이윤옥

▲박작성이 호장산성으로 애곡 고구려 박작성이 만리장성의 기점으로 둔갑한 현장을 둘러보는 답사단원들, 조형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조형물 뒤로 동그라미 부분이 호산장성 꼭대기이며 산성 너머는 압록강이다.
이윤옥
우리 답사단은 호잔장성(600미터) 꼭대기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중간 지점까지 올랐다. 이날은 장맛비가 약간 소강상태라 우비와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았지만, 그 대신 비탈진 성곽을 오르는데 비지땀이 온몸을 적셨다. 고구려 역사의 왜곡된 현장이라 그런지 이날따라 무더위는 더욱더 답사단을 괴롭혔다. <취재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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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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