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앞 도로변에 칸나 역시 박기완 씨가 심었다.마을의 빈땅과 잡풀더미가 우거질만한 곳마다 꽃을 심어서 많은 사람들을 기분좋게 하고 있다.
오창경
올해 87세인 박기완씨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지금도 2천 평의 밭에 쪽파와 완두콩, 참깨 등을 심은 전형적인 농부이다. 그가 가꾸는 버스 정거장 옆 가화리 손바닥 정원에는 양귀비를 비롯해 키 작은 해바라기, 봉숭아, 백일홍, 맨드라미 등의 정겨운 우리 토종 꽃들이 꽃이 피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꽃을 좋아하셔서 그런지 항상 그대로세요. 허리도 안 굽으시고...."
"이잉, 난 아픈 데가 없어. 아직까지 무릎이며 허리가 쓸만 혀. 부여 장날마다 물리 치료는 받으러 다니는디 아퍼서 가는 게 아니고 예방 차원으로 가는 겨. 장 구경도 할겸...."
느긋하고 긍정적인 충청도식 마인드까지 장착한 박기완씨 다운 대답이었다. 자연주의 삶을 추구하며 정원을 가꾸며 동화 작가 겸 삽화가로 살았던 타샤 튜더 같은 분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그는 비록 화폭에 그림을 그리지는 못해도 땅에 꽃으로 그림을 그리는 분이었다.
올해 87세인 그는 국가적 질곡의 시절을 다 겪고 살아남은 세대이다. 살아남기 위해 전투적으로 살았던 세대라 꽃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있으리라 짐작하지 못했다. 1년에 한두 번쯤 쪽파를 사러 갈 때마다 충청도 식 유머와 웃음으로 맞아주곤 했던 여유의 원천은 꽃을 좋아하고 항상 꽃을 가꾸는 여유 때문이었다. 그의 꽃양귀비 같은 미소와 여름 칸나처럼 붉은 그의 꽃사랑 열정을 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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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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