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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롄에서 '광장무'를 그렸습니다

[중국 다롄 여행기-1] 광장에서 함께 춤추는 사람들

등록 2024.07.18 09:40수정 2024.07.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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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다롄시에서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을 그렸다. 정확한 묘사 보다는 현장성을 살려서 그리는 것이 어반스케치의 매력이다.

다롄시에서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을 그렸다. 정확한 묘사 보다는 현장성을 살려서 그리는 것이 어반스케치의 매력이다. ⓒ 오창환

 
"이~ 얼~ 싼~  치에즈!"

찰칵!


지난 금요일 저녁 나는 중국 다롄(大连)시의 한 식당에서 다롄의 스카이 산악회 회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얼싼은 하나 둘 셋이라는 뜻이고 '치에즈'는 원래 채소 중에서 '가지'를 말하는데, 발음을 하면 미소를 짓게 되어 중국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면 치에즈를 외치곤 한다. 

다롄은 중국 랴오닝성 랴오둥 반도 남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로 인구 600만의 거대 도시다. 10여 년 전에 사업차 많이 갔었다. 그때 만난 다롄 스카이 산악회에서 친선 초청을 해서, 사계절 산악회의 대표인 남사장과 함께 박사장 그리고 내가 같이 가게 되었다.

다롄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인데 인천공항에서 다롄 저우수이쯔(周水子) 국제공항까지 불관 1시간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는 공사 중단된 건물이 많이 있었고 차량이 내뿜는 매연으로 공기가 나빴다.

이번에 와보니 공사가 중단된 건물들이 모두 완공되어 있어 도시가 깨끗하고 번듯했다. 공기도 깨끗해서 주변에 물어보니 전기차가 많이 보급되어 그렇다고 한다.

지루한 수속을 거치고 밖으로 나가니 스카이 산악회 장성군회장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장 회장님은 오랫동안 해관 업무를 담당한 공산당 간부이신데 이제 퇴직하셔서 표정이나 복장이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개발구에 있는 인판(銀帆)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스카이 산악회에서 준비한 만찬장으로 갔다. 그런데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 측이 특별히 중국 화가들을 참석시킨다고 한다. 나는 졸지에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어 부담스러웠다.

제법 큰 만찬장에 연단이 있고 스카이 산악회 50여 명이 원탁에 앉아 있었다. 만찬장 한쪽에는 화가들이 지필묵을 펼쳐놓고 있었는데 한분은 붓글씨를 쓰고 계셨고 한 분은 대나무를 그리고 계셨다. 만찬에 참여한 회원들이 둘러 서서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도 하고 대화도 나눈다.


동양화에서는 이런 즉석 시연의 전통이 있다. 그림이나 글씨를 쓰는 것을 구경도 하고 대화도 하다가 나중에 헤어질 때 작품을 나누어 갖기도 한다. 문화를 즐기는 좋은 전통인 것 같다.
 
a  왼쪽이 그림을 그려주신 왕쉬꾸이(王樹貴) 선생님이고 오른쪽이 글씨를 써주신 만나쥔(滿亞軍) 선생님이다.

왼쪽이 그림을 그려주신 왕쉬꾸이(王樹貴) 선생님이고 오른쪽이 글씨를 써주신 만나쥔(滿亞軍) 선생님이다. ⓒ 오창환

 
아직 남아있는 공동체적 문화

만찬 자리라서 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웠다. 대신 갖고 갔던 스케치북을 작업 중이던 작가님들에게 내밀었더니 흔쾌히 글씨를 써주시고 그림을 그려 주신다. 종이가 화선지가 아니라 불편했을 텐데 가지리 않고 즉석에서 잘 그려 주셨다. 

만나쥔(滿亞軍) 선생님은 글씨를 써주셨고 왕쉬꾸이(王樹貴) 선생님은 멋진 난을 쳐주셨는데, 꿀벌도 3마리 그려 넣어주셨다. 왕 작가님은 중국 서화협회 회원이시고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a  왕쉬꾸이(王樹貴) 화백이 난을 즉석에서 그려주셨다. 꽃도 예쁘지만 꿀벌도 3마리나 그려주셔서 그림의 품격을 높여주셨다.

왕쉬꾸이(王樹貴) 화백이 난을 즉석에서 그려주셨다. 꽃도 예쁘지만 꿀벌도 3마리나 그려주셔서 그림의 품격을 높여주셨다. ⓒ 왕쉬꾸이(王樹貴)

 
a  만나쥔 선생께 받은 글씨. 뚯은 몰라도 글씨는 멋지다.

만나쥔 선생께 받은 글씨. 뚯은 몰라도 글씨는 멋지다. ⓒ 만나쥔(滿亞軍)

   
그런데 만나쥔 선생님의 글씨를 받을 때 그 의미를 들었는데, 깜빡 잊고 그만 써놓지를 않았다. 그 후 다른 중국사람 여러 명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은 한 명도 없었다. 옛날 한문을 못 읽는 것은 한국사람이나 중국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음날 저녁 장 회장님이 우리를 호텔 근처에서 광장무를 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상가들 사이에 넓은 광장이 있는데, 거기서 춤을 춘다.

저녁 8시가 다가오자 광장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나이 든 사람들부터 날렵한 젊은이들 까지. 편안한 복장으로 온 사람들도 있고 단체로 추리닝을 맞춰 입은 사람들도 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고 일제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잘 추는 사람들이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못 추는 사람들은 뒤에서 따라 하는데, 특별히 어디서 배우는 것은 아니고 그냥 따라서 하다 보면 잘 추게 된다고 한다. 춤동작이 은근히 신나고 중독성이 있다. 우리 일행도 모두 광장무에 동참해서 춤을 췄다. 나도 그림을 안 그렸으면 같이 춤을 췄을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임에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서 빈부격차도 심하고 사회문제도 많다고 하지만, 광장무에서는 공동체적 문화가 남아 있는 것 같다. 광장무는 매일 저녁 1시간 정도 진행된다.
 
a  왼쪽은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 오른 쪽은 내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다롄 시민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왼쪽은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 오른 쪽은 내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다롄 시민에게 그림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 오창환

 
나는 광장 한쪽에 있는 화단 벤치에서 스케치를 했는데, 춤추는 사람 수가 점점 늘어나서 나중에는 춤추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그림을 그리는 격이 됐다. 춤을 추는 중간에 내 그림에 관심을 보이고 멋지다고 말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 그릴 때에는, 현장성을 살려서 여러 각도에서 본 사람들을 그냥 자유롭게 그리는 것이 좋다. 너무 정확하게, 잘 그리려 하기기보다는 대강 던지는 식으로 현장성을 살리는 것이 좋다.

땅거미가 밀려오면서 광장무도 끝이 나고 내 그림도 끝났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어반스케치는 언제나 짜릿하다.

-다롄 여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
#다롄 #광장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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