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나온 저녁식사
제스혜영
급하게 오느라 핸드폰 충전기가 없었는데 간호사가 스스럼없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 충전해 주었다. 다행히 샴푸와 비누는 챙겼는데 수건을 빼먹고 왔다. 샤워는 포기해야지 했는데, 아침이 되자 조무사가 수건을 한 장 갖다 주었다.
"여기 야식도 있어요. 혹시 배가 고프면 나한테 말해요. 먹을 것 좀 갖다 드릴게요."
"장기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혈액순환을 위해 압박양말을 신으세요. 12시간만 신고 있으면 돼요. 여기 있어요."
어쩜 이렇게도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친절을 가진 천사들이 이곳에 다 모였을까. 7시간 10분 동안 징글징글하게 고문받았던 고문실에 대해 조금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일요일 새벽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룻밤만 병원에 입원한 후 그 다음 날 오후에 기쁘게 퇴원을 했다. 그런데 증상이 곧 다시 심해져서 월요일 저녁 눈물을 머금고 '고문실'(응급실)로 다시 끌려갔다. 그날은 6시간을 좀비처럼 기다렸다.
'모든 국민의 질병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말, 의미는 좋지만
영국은 모든 국민(6개월 이상 거주 외국인 포함)에게 지불 능력이 아닌 필요에 따라 공평한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취지 하에 1948년 국가의료제도(National Health Service : NHS)를 설립했다. 모든 국민의 질병을 국가가 100% 책임지는 제도로 영국에서 자랑하는 제도다. 그렇지만 환자들뿐만 아니라 의료원들도 징글징글하게 고생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영국의 메딕포털 사이트에 의하면 2024년 영국의 국가의료제도(NHS)가 직면한 세 가지 주요 과제는 이렇다고 한다.
첫째, 자금 부족.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NHS에 할당된 자금의 부족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특정 치료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며, 고품질 진료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둘째, 인력 부족. NHS는 의사, 간호사, 관련 의료 전문가를 포함한 다양한 의료 직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직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존 인력에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면서 업무량이 증가하고 소진되기 쉽고 환자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셋째, 인구 노령화. 영국의 인구는 노령화되고 있다. 인구 노령화는 만성 질환의 유병률이 높아지고 복잡한 의료 요구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장기 요양, 전문 노인 서비스, 임종 간호를 포함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 이런 서비스 개선에도 충족되어야 한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4명 중 1명은 GP(일반의)와 직접 만나지 못한 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라인이나 약국에서 약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6명 중 1명(16%)은, 스스로 치료하거나 의료 전문가가 아닌 다른 이에게 진료를 요청한단다.
보통 오전 8시가 되면 클리닉의 방문 예약이 가능하다. 그런데 백이면 백, 대기번호가 20이 넘는다. 한 시간은 넘게 있어야 통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스코틀랜드는 병원뿐 아니라 처방약도 무료다. 때문에 돈 없는 사람들이라도 일단 기다리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약물이나 초음파, MRI 검사, 수술 등을 필요 이상으로는 하지 않아서 좋다. 병원에서 만났던 천사 분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두 번째 입원했을 때는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주사는 꽂혔는데 수액줄을 끊어 주니 가볍게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스코틀랜드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 병원 주위가 다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는 것. 포스 밸리 왕립 병원(Forth Valley Royal Hospital) 환경이 호텔 5성급과 맞먹는 것 같아서 걸으면서 병이 다 낫는 기분이었다.
막상 입원해보고 나니 영국 의료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느 나라라고 의료제도에 문제가 없겠는가. 다만 영국의 의료제도가 조금은 더 개선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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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어요. 자연과 사람에게 귀 기울이며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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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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