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신문
완도읍의 장좌마을은 1000여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서기 828년(흥덕왕 3년) 흥덕왕은 청해진을 설치하고 장보고대사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서남해안의 방어는 물론 남해안과 동중국해안에 출몰하는 해적을 소탕하게 하였다.
장좌마을은 청해진 최고의 핵심시설이라 할 수 있는 장도(將島)가 있는 마을로 장도로 들어가기 전 이곳 사람들이 매단(埋端)이라 부르는 둔덕이 있다.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이곳이 군영(軍營)을 보호하기 위해 흙을 인위적으로 쌓아 만든 군사시설이라고 하여 지난 1990년대 청해진유적 발굴단에서 트렌치(trench. 지표조사)를 넣었으나 전반적인 조사결과 통일신라시대 문화층(文化層)은 발견되지 않아 자연적으로 생성된 둔덕으로 판명됐다.
이 매단에 장좌마을의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다. 면적은 약 5000㎡(1500평)에 130~150년 생 소나무 37본, 크기가 남다른 구실잣밤나무 6본, 참나무 5본, 팽나무 2본, 붉가시나무 1본이 대표적으로 자라고 있다. 이외에도 벚나무 6본, 비자나무 1본, 후박나무 2본과 함께 최근에는 마을에서 공원으로 정비하면서 군에서 동백나무 150본을 식재하고 팔각정을 세군데 세웠다.
외부에서 언 듯 보면 방풍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숲이 허술하나 주민들에 의하면 매단의 숲이 있으므로 해서 여름철 샛바람(동남풍)이 아무리 몰아쳐도 마을은 조용하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60년전만 하더라도 숲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커다란 팽나무 다섯 그루가 고사하고 해송도 태풍으로 많이 쓰러져 마을에서 베어냈다고 한다.
보통 이러한 둔덕은 풍수적으로 비보기능(裨補機能)을 갖추는 경우가 많은데 매단은 비보기능보다는 동남쪽에서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매단 뒤쪽으로는 집이 들어서 있고 군데군데 밭(田)이 형성되어 밭농사를 짓고 있다. 장좌마을은 갱번을 전포와 후포로 나누는데 그 기준점이 바로 매단이다, 매단에서 뒤쪽을 후포(後浦. 뒷개) 앞쪽을 전포(前浦. 앞개)라 한다. 전포는 연중 굴(석화)양식이 이루어지고 후포는 개펄이 좋아 고막양식과 겨울철 감태가 특산물로 유명하다.